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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발밤발밤13 - 이태원 부근

by 장돌뱅이. 2016. 5. 8.


이태원 하면 우선 길거리를 오고가는 다양한 국가와 인종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인종의 용광로' 지역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음식이 따르기 마련이니 또한
이태원은 다양한 국적의 먹을 거리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 주재로 인해 오랫동안 이태원을 가보지 못했다.
이번 연휴 첫날 근 10년여 만에 아내와 이태원을 찾았다.   
이태원역 근처 쟈니덤플링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미 인터넷에서 '검증'된 곳이다. 메뉴도 검증된 것을 선택했다.

만두와 군만두의 특성을 반반씩 지닌 '반달'과 홍합만두국.
추가로 주문한 고기를 넣지 않고 부추향이 강한 군만두도 나쁘지 않았다.

 

 

식사 후 특별한 목적지 없이 이태원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이태원의 국제적 분위기는 이전 보다 훨씬 강화된 느낌이었다.
예전보다 더 많은 외국인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물결처럼 흐르는 인파들 속에서 유독 중국어가 자주 들리는 것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음식점들도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상권은 이면 도로까지 파고 들어가 있었다.  
아내는 마치 태국 방콕의 어느 '쏘이(골목길)'  같다고 했다.  

쓰레기 처리 안내문에 영어와 아랍어가 섞여 있는 것도 이태원다웠다.



경리단길을 걸어 다다른 곳은 "한국 술집 안씨막걸리" 였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곳 주인장에 관한 인터뷰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퇴근해 엄마 옆에 다가앉았다. 마음을 졸이며 이야기를 꺼냈다.
   "나 회사 그만두고 요리할래."
   빨래를 개키던 엄마는 처음엔 놀란 눈치를 보이다가 곧
   "그럼, 하고 싶은 거 해. 엄마도 할아버지 반대로 미대를 못 간 거 평생 후회한다 후회해"라고 답했다.
   곁에서 모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빠는 "이제 더 맛있는 요리 먹을 수 있는 거지"라며 웃어넘겼다.
   비장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냈는데, 고교 때부터 비싼 학비를 내며 미국으로 유학해 명문 코넬대학을
   업하고 구글이라는 '신의 직장'을 다니던 딸이 돌연 그만두고 요리를 배우겠다는데······. 
   모에 대한 설득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뭐지, 이건?'
   (...)
   그렇게 안주원씨는 20대 중반에 요리사의 길로 들어섰다. 
                                                         - 한겨레신문 기사 중에서 -


안씨막걸리는 그 안주원씨가 차린 막걸리집의 이름이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갖가지 막걸리에 한식 퓨전스타일의 안주가 있는 곳이다.

세칭
아이비리그 중의 하나라는 코넬대 졸업의 화려한 '스펙'을 배경으로 한
구글이라는 현실적 안락함을 뿌리치고 생소한 길을 개척하겠다는 딸보다
그것을 심상히 받아들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놀라웠다.

기사를 읽으며 아내가 물었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글쎄, 솔직히 '야 미쳤니? 그까짓 요리하겠다고 남들 다 부러워하는 직장을 때려치워?
요리야 틈나는 대로 취미로 하면 되잖아!' 하며 도시락 싸들고 막아서지 않았을까?

남의 일엔 짐짓 개방적이고 파격적인 듯 거침없는 의견을 내놓으면서도
자기 자식의 일엔 매우 폐쇄적이고 보수적으로 처리하려는 양면성. 
아내와 나도 거기서 멀리 있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식을 키우는 일이다.
모든 하나하나의 상황이 자식도 처음이고 부모로서도 처음인 일이기에
'그래'할 때와 '아니'할 때가 언제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딸아이(부부)가 어버이날이라고 전화를 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 딸아이가 영위하는 통상적이고 평균적인 삶에 나는 안도하고 고마워한다.
그러나 가끔씩 안주원씨 부모와 같은 분을 만날 때면 나는 아버지로서 딸아이의 입장에서
그의 행복을 얼마나 생각해보았을까 하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얼마만큼은 딸아이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
그리고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아쉬움 속에 깨달으면서.

안주원씨가 쓴 글을 옮겨본다.

"행복해지는 법을 찾은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눈뜨자마자 엄청난 용기가 솟아나서도 아니고
누군가가 알려줘서도 아니었어요. 처음엔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손대기 시작한 제빵과,
전공 과목이 지겨워 일부러 들었던 철학 수업, 운동하려고 시작한 춤, 이런 '딴짓' 속에서
행복의 단서가 보였어요. 내가 무얼할 때 즐겁고, 무얼 잘할 수 있는지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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