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센터 마노와 남사당 전수관은 잔디밭을 통해 울타리 없이 이어져 있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남사당 전수관 앞 야외공연장에서는 남사당 공연이 벌어진다.
입장료는 없다. 강조를 위해 반복하자면 무료공연이다. 무료라고 해서 공연의 진행이나
내용이 허접한 것은 결코 아니다. 가격(?) 대비 만족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비싼 입장료를
내고 보았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을 만큼 수준급의 공연이다. 일단 공연을 시작하면
두 시간이 넘는 공연시간이 금방 지나갈 정도로 몰입하게 된다.
그만큼 재미와 신명이 있다.
남사당은 “1900년대 초 이전에 있어 서민층의 생활군단(生活群團)에 자연발생적 혹은
자연발전적으로 생성된 민중놀이집단”(심우성)을 일컫는 이름이다. 남사당놀이는 다른
우리의 전통 민속놀음의 운명처럼 외세가 밀려오던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쇄락하였다.
특히 일본제국주의의 국토 강점 36년은 남사당놀이의 자생적 발전과 전승이 정지되고
소멸되는 결정적 기간이 되었다고 한다.
민속놀이를 사회기층민으로서의 민중이 그때그때 처한 사회 전반의 객관적 의의와 한계를
인식하면서 공동체의 보편적 염원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해온 집단창작물이라 규정할 때
외세나 소수의 지배세력과는 기본적으로 대치되는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70-80년대 부정한 군사정권의 압제에 맞선 치열한 민주화투쟁의 과정에서 우리 전통극의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민중성과 마당놀이란 개방적 형식이 문화운동의 한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 할 수 있겠다. 아울러 그것은 민주화운동의 한
부분으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전통에 대한 확인과 발굴, 그리고 현대적 계승과 발전을
통하여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고양시키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00년 안성의 남사당 전수관의 설립에 이어 2002년에 창단된 안성시립 남사당바우덕이
풍물단은 2003년부터 4년째 토요상설공연을 해오고 있다.
공연시간은 토요일 오후 06:30부터 시작된다.
진즉부터 이 공연의 일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미루고 미루다 10월 말 올 마지막 공연이
되어서야 가보게 되었다. 어저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무료공연이라는
혜택이 나를 게으르게 했는지도 모른다.
남사당놀이는 한 마당에서 여섯가지 놀이(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놀음)를 연속해서 노는 것이다.
올 마지막 공연의 시작은 풍물반주를 곁들여 연회가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비는
고사굿으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탈놀음인 덧뵈기가 이어졌다. 남사당 덧뵈기 네 마당
중에서 셋째 마당인 <샌님잡이>가 공연되었다. <샌님잡이>에는 양반인 샌님과 그의 부인
노친네, 그리고 상놈 하인인 말뚝이가 나온다. 춤 보다는 재담과 동작부분이 우세한
양반과 상놈의 갈등을 묘사한 풍자극이다.
샌님 : (...) 얘 뚝아 뚝아 말뚝아.
(말뚝이 뛰어나오며)
말뚝이 : 말뚝인지 꼴뚝인지 대령했소. (구성지게) 샌님 샌님 큰댁 샌님 작은댁 샌님,
똥골댁 샌님, 샌님을 찾으려고 이리 저리 저리 이리 다 다녀 보아도 못
보겄더니 여기와서 만나보니 안녕하고 절령하고 무사하고 태평하고 아래
위가 빠꼼합니까요!
샌님 : (어이 없어) 네 이놈 양반을 만났으면 절을 하는 게 아니라 뭣이 어쩌구 어째!
말뚝이 : 네 절이요? 알지요 압니다. 서울로 일러도 새절 덕절 도곡사 마곡사 물건너
봉원사 합천 해인사 염주원 염주대 수원 용주사 이런 절 말씀이오?
- 심우성의 『한국의 민속극』-
덜미라고 부르는 남사당놀이의 꼭두각시 놀음은 우리나라에 하나 밖에 없는
민속인형극이라고 한다. 작은 무대 위에 나무와 천으로 만든 인형을 움직여 재담과 연희를
펼친다. 이 날은 <평안감사마당>이 공연되었다.
*위 사진 : 남사당의 인형극 덜미는 별도의 무대에서 공연된다.
요즈음 마루체조 선수들이 텀블링을 하는 것 같은 땅재주 살판은 “잘 하면 살 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불러졌다고 한다. 재주꾼이 나와 매호씨라고 부르는
어릿광대와 재담을 주고받으며 갖가지 종류의 재주넘기를 보여주었다.
기술이 서툰 한 재주꾼이 익살을 부리며 자신의 서툰 기술을 과장하여 다른 사람의
재주를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과정이 시종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위 사진 : 살판 공연의 모습.
풍물놀이는 20- 30명의 대규모 연희자가 꽹과리, 장구, 북, 징, 소고, 태평소 등을
연주하며 율동을 보이는데 익히 알고 있는 소리이며 가락임에도 신명이 났다.
상모돌리기와 무동타기 등의 볼거리를 함께 보여주었다.
버나는 접시돌리기와 비슷하나 남사당의 버나는 가정에서 곡물을 거르는데 쓰는 채를
돌리기 쉽도록 둥글고 넓적하게 개조한 것이다. 단순히 버나를 돌리는 재주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버나잡이와 받는 소리꾼인 매호씨와 사이의 재담과 소리가 곁들여졌다.
어름은 줄타기놀이의 남사당 용어이다.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걷듯이 어렵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름은 어름산이(줄꾼)가 매호씨가 해학과 흥이 넘치는 재담을 주고
받으며 줄 위에서 여러 가지 위태로운 동작을 선보이는 것이다.
간단한 <앞으로 가기> 동작부터 시작하여 점차 난이도 높은 동작으로 옮겨갔다.
나중에 관련 책자를 보니 <억석에미 화장사위>, <외허궁잽이>, <쌍허궁잽이>,
<양반밤나무 지키기> 등 다양하고 기묘한 줄타기의 기예가 나와있었다.
우리 말로 된 각 기예의 이름이 기예 자체만큼이나 재미있었다.
이 날의 어름산이(줄꾼)은 영화「왕의 남자」에서 주인공인 감우성과 이준기의 줄타기
대역을 했던 분이라고 하여 특별히 인기를 끌었다.
줄타기뿐만 아니라 전 공연에 걸쳐 연희자와 재담을 주고 받는 매호씨의 역할은 특이했고
중요해 보였다. 그것은 공연장을 단순히 기묘한 기예만을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라
이야기가 넘나드는 생생한 현장으로 돋보이게 했다.
*위 사진 : 관객과 연희자가 하나가 되는 뒤풀이 시간.
마지막은 관객과 연희자가 하나가 되는 뒷풀이였다. 연희자와 관객들은 모두 마당으로
나와 저마다의 신명에 맞춰 즐거운 춤을 추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상식적인 명제가 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토요일 저녁의 안성에서 그것이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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