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의「호모에렉투스」

*4월 21일 한겨레 그림판


 타이어를 껴입고 배를 깔고 바닥을 기며 구걸하던 걸인이 비가 오자 벌떡 일어나 
멀쩡하게 걸어가는 모습에 어이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지만

 상인에게 상술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걸인에게 동냥의 공정거래를 요구할 참인가 
정치꾼들의 쇼는 전략이라는 건가

 사지 멀쩡한 놈이라고 혀를 차지만 사지 멀쩡한 거지가 없는 세상이라면 모를까 
구걸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구걸 가운데 어떤 구걸이 도덕적인가

 비참해야 하는데 덜 비참한 것이 문제였을 것 발빝에서 계속 기어야 하는데 머리를 
쳐들었기에 혐오가 생겼을 것 고귀하고 선한 본성에 상처를 입혔다는 건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굽신대며 표를 구걸하고 신분을 위장하고 머슴입네 간을 빼줄 
듯이 가난한 자의 발바닥이 되겠다던 정치인들의 계급 위장은 고상한 전략인가

 생존을 위해 직립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들뿐인가 진화를 교란하고 기적을 
연출하는 인간들이 그들뿐인가

 배를 깔고 바닥을 기다 멀쩡하게 일어나는 기적과 숙였던 고개와 바닥에 깔았던 신분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거만한 지배자가 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도덕적인 기적인가

-백무산의 시, 「호모에렉투스」-

선거가 끝났다. 후보자들의 길바닥 절과 재래시장 순례도 끝이 났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그런 식의 '머슴과 서민 친화적' 퍼포먼스는 이제 식상하다.
좀 다른 모습으로 자신들의 진정성을 보여줄 순 없을까?
어차피 선거가 지나면  4년 뒤에나 볼 수 있는 '도덕적 기적'임을 이젠 누구나 알고 있는데.

출구 조사가 나오기 전 지인과 카톡으로 결과를 예상해 보았다.
"경상도와 강원, 그리고 제주를 제외한 전지역에서 통합당의 참패, 
정의당의 고전, 그리고 민생당과 국민의 당의 몰락."
예상은 출구 조사는 물론 개표 결과에서도 (제주를 빼고는) '쪽집게'가 되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여론이나 판세 분석의 특별한 식견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느낌이 그럴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정의당의 고전은 안타까웠다. 고인이 된 노회찬의원의 빈자리가 크게 보였다.
하지만 어차피 몇몇 명망가만으로는 외연의 확대와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판의 모습에는 진저리를 치지만 외면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면하고 싶은 그들의 행보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우리의 꿈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정치와 개인의 일상은 따로 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나쁜 버릇을 가진 반려견을 훈련하는 텔레비젼 프로를 즐겨본다.
개에게 올바른 버릇을 가르치는 방법은 간략하게 말하면 채찍(절제)과 당근이었다.
자주 우리를 실망시키는 정치인들을 훈련시키는 방법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게 4∼5 년마다 한 번 씩 받는 투표용지뿐이라는 게 안타깝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된 이번 선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