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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선운사에는 동백꽃이 어울린다.

by 장돌뱅이. 2012. 9. 12.

*2006년 4월에 쓴 글입니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앞다투어 피어나는 꽃소식이 가득하다.
4월 중순 선운사의 동백꽃을 생각하면서 고창군 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선운사 동백꽃이 지금 어떻습니까?”
“4월말경이면 절정일 것 같은데... 올해는 동백꽃 상태가 좀...”
“왜요? 상태가 좋지 않나요?”
“예. 아마 지난 겨울 폭설 때문에 가지가 찢기고 꽃눈이 얼어서그런지 예년에 비해서
꽃이 확실히 적게 핀 것 같네요.”
“날씨가 그런 걸 어쩌겠어요. 할 수 없죠 뭐.”
“그래도 절 입구의 벚꽃은 화사하니까 실망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꼭 다녀가세요.”

 

여행지의 해당 관청에 전화를 할 때마다 예전과 확실히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무원들의 친절함이다. 고창군청의 그 공무원도 묻지 않은 벚꽃 소식까지 전해주며
친절한 안내를 해주었다.

그러나 내게 ‘선운사동백꽃’은 혀놀림도 부드럽게 발음되지만 ‘선운사벚꽃’은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부드럽다는 느낌은 자연스러움을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익숙해진 어감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선운사와 동백꽃이 만나서 오래도록 만들어온 어떤 정서와 분위기가
우리의 몸속에 스며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런 자연스러움의 총체를 전통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벚꽃과 벚꽃놀이가 우리나라의 봄을 알리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더불어 이름난 사찰이나 계곡은 물론이고 아파트 화단이나 길가의 가로수까지 곳곳에
벚나무가 심어지고 있다. 우리의 봄놀이에 본래 벚꽃놀이는 없다고 한다.
옛 그림 속에도 봄꽃은 매화나 복숭아꽃이었지 벚꽃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벚꽃이 흔치 않았던 탓이다. 때문에 봄을 즐기는 우리의 전통도 벚꽃놀이가 아니라
화전놀이였다. 음력 춘삼월 꽃이 피면 사람들은 음식을 장만하여 서로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즐겼다. 이때 꽃잎으로 장식한 부꾸미를 부쳐 먹었던 것이다.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우리의 제주도라고 하지만 이 땅에 벚나무가 본격적으로 심어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봄을 즐기는 벚꽃놀이는 일본식 감성이기 때문이다.

봄축제로 유명한 군항제의 원천은 일본이 대륙침략기지로 진해를 개발하면서 곳곳에 심은
벚나무이다. 80년대 초 ‘창경원’이란 일제시대의 오욕스런 이름에서 제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을 때까지 ‘창경원 밤벚꽃놀이’는 선남선녀들에게 유명한 데이트 코스였다.
일제는 남의 나라 왕궁을 동물원과 놀이동산으로 만들면서 벚나무까지 잔뜩 옮겨 심었던
것이다. 꽃 자체에 이념이 있을 리는 없지만 이 땅의 오래된 벚나무는 이처럼 강요된
정서의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름답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야? 벚꽃이 화사하고 멋있긴 하잖아?”
딸아이의 말이다.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 벚꽃놀이를 집어치우고 (나 역시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화전놀이를 부활하자는 이야기도 현실성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쟁이라도 하듯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지자체가 ‘전 국토의
벚꽃화’에 나서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꼭 그것이 ‘얄미운’ 일본의 정서에
부합된 꽃이라는 애국적(?) 논리 때문이 아니라, 지방마다 기후 조건과 특성에 맞는
나무와 꽃을 개발하여 국토를 좀더 다양한 모습으로 가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경상도에서 보았던 벚꽃을 충청도나 전라도에 가서도 만나야한다는 것은 지겨운 일 아닌가.
영화 속 장동건을 흉내내본다.
“고마해라. 많이 심었다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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