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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내가 읽은 쉬운 시 128 -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서 낮보다 밤중에 아내와 산책을 나간다. 저녁을 먹고 집 주변을 대략 3KM 정도 걷는다. 어둠의 적요와 불빛의 활기가 공존하는 밤은 모든 것이 드러난 낮보다 오히려 더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생각은 풍경을 닮는다고 했던가? 아니면 생각이 풍경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걷는 길의 명암에 따라 감정도 미세하게 변화한다. 밤이라 해도 요즈음은 습도까지 높은 장마철이라 천천히 걸어도 덥다. 더위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다. 흐르는 땀을 시원한 물로 씻어내는 즐거움으로 더위와 어울리는 것.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이내 더위가 가고 또 다시 소슬한 바람이 불 것이다. "지금!" 하는 순간마다 그것은 영원히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기억이 된다. 덧없다지만 그래도 어떤.. 2019. 7. 28.
정화되는 시간 생의 어떤 시간이 너와 보낸 하루 만큼 맑고 깨끗할 수 있을까? 이순이 지나고서도 나를 그렇게 정화시킬 수 있으니 고마울 뿐이다. 하루 종일 쉬임없이 함께 달리다가 걷고 걷다가 달리고, 떨어진 솔방울을 발로 차 굴리고, 그네와 미끄럼을 타고, 숨바꼭질을 하고, 기차를 움직여 색색의 터널을 지나다간 별안간 낚시놀이로 바꾸고, 벌써 수십 번 째인 '호랑이와 곶감'과 '햇님달님'을 마치 처음인양 나는 이야기 하고 너는 긴장해서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표정이 좋아서 나는 또 더욱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을 섞는다. 무등을 태우고 장난을 걸 때마다 자지러지는 너의 웃음소리라니! 그래도 친구야 너의 "한번 더!" 하는 요청은 세 번까지만 해주라. 거절할 수 없는 네 말을 들어주다 보니 허리가 시큰시큰해온다. 내 친구.. 2019. 7. 25.
"일본아, 나는 너의 나라를 주어도 싫다" 식민주의의 본질은 폭력이다. 식민지의 자원과 인간에 대한 수탈을 목적으로 자행되는 식민국의 야만적 폭력이다. 그것은 종종 문명, 개화, 개발, 경제, 교역, 교육, 선교 등의 이름을 내걸지만 실질적으로는 총과 칼에 의해 자행된다. 식민지의 정치 · 경제 · 문화적 구조는 몰론 모든 유무형의 재화와 가치들은 식민국의 목적에 맞게 왜곡되고 종속된다. 식민지에게 독립적인 것은 없다. 식민지의 어떤 변화도 결국 식민국의 이익을 위해 기획되고 실행된 것일 뿐이다. 일제 강점기 역시 본질은 수탈과 수탈 위한 폭력이다. 역사 시간에 배웠거니와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는 일본을 위한 쌀 공급 '창고'와 침략 전쟁을 위한 병참 기지화라는 기형적인 변화를 강요받았다. 조선의 민족경제는 몰락했고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는 성장 발.. 2019. 7. 25.
서초역을 지나며 헉! 놀랐다. 괜찮은 걸까? 정말 괜찮은 걸까?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겠다.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 ' 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 너희가 참으로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한다면, 너희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예로부터 영원히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에 살게 하겠다. 그런데 너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다.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그러면서도 내 이름.. 2019. 7. 23.
잘 먹고 잘 살자 58 - 장마철 집밥 서울엔 별로 비가 오지 않는 장마다. 태풍까지도 남해안만 흔들었을 뿐이다. 다행이지만 장마가 끝나고 나면 혹 가뭄 걱정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래도 조금씩 내렸던 비 덕분인지 미세먼지가 없어서 좋다. 두터운 구름과 바람까지 있어 아직까진 선선하고 쾌적한 여름이다. 매미소리가 맹렬해지기 시작하였으니 곧 열대야도 밀려오겠지만. 일주일에 세 번씩 가던 노노스쿨이 방학이다. 덕분에 아내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 학기 동안에 배운 음식 중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 복습겸 만들어 보았다. 거기에 책과 인터넷에서 찾아내 아내의 '재가(裁可)'를 얻은 음식도 더했다. 아내의 품평을 받으며 음식을 나누는 식탁이 어릴 적 여름날 멍석 위의 저녁 식사처럼 오붓하다. 삶에 더 무엇을 욕심내랴. 아내의 아픈 한 쪽 팔이.. 2019. 7. 22.
발밤발밤 50 - 이태원 골목길 서울엔 한 시기마다 그 시기를 대표하는 유흥공간이 있었다. 60년대의 명동, 70년대의 종로, 80년대의 이태원, 90년대의 압구정동 등등. 21세기에는 어느 지역이 그 이름을 이어받았을까? 홍대 앞? 청담동? 모르겠다. 유흥공간이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각 지역마다 어떤 특성을 드러내며 특화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내와 나는 60년대에는 아직 어렸고 80년대는 직장 문제로 둘 다 지방으로 갔으므로 아무래도 대학생 시절이었던 70년대에는 종로가 친숙했다. 아내와 처음 만난 곳도 종로였고 자주 만나는 곳도 종로였다. 봄비가 내리는 저녁이었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청승을 떨며 무교동 거리를 걷던 나는 문득 저 앞에 그녀가 걷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흠뻑 젖은 온몸이 바.. 2019. 7. 20.
발밤발밤49 - 서울숲 그는 알았다. 저 강물은 영원히 흐르고 흐를 것이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거기에 있어 늘 똑같은 물이지만, 동시에 늘 새로운 물이라는 것을. -헤르만 헷세, 『싯다르타』에서- 아내와 서울숲을 걸었다. 이른 새벽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풀숲 사이에 스멀거리던 어둠의 잔해들이 강물 위로 풀어지고 있었다. 한 여름이지만 새벽 공기는 시원했다. 세상의 모든 시간과 장소는 처음이다. 여러번 걸은 적이 있는 서울숲이라 해도 우리는 생에 두 번 같은 시간과 장소에 서있을 수 없다. 강물이 "언제나 거기 있어 똑같은 물이지만 동시에 늘 새로운 물'이듯이. 아내는 문득 지난 봄 세상을 떠난 사람과 언젠가 이 길을 함께 걸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그가 했던 말과 행동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럴 때.. 2019. 7. 18.
조코비치를 응원했다 *위 사진 : 텔레비젼 중계 화면 촬영 테니스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와 2위 로저 페더러가 맞붙은 윔블던 결승. 조코비치가 세트 스코어 3대2로 이기고 우승을 했다. 조코비치가 이긴 3세트는 모두 타이브레이크에서 따낸 것이었다. 특히 마지막 세트는 게임 스코어 12-12에서 새로운 규정에 따라 타이브레이크에 들어갔다. 결국 조코비치가 7-3으로 4시간58분의 경기를 마침내 끝냈다. 2게임 차가 날 때까지 경기가 계속 되어야했던 이전 규정이 바뀌지 않았다면 날밤이 새도록 계속되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누굴 응원하지? 조코비치? 페더러?" 경기 전 아내와 서로 묻다가 조코비치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누구든 특별히 응원할 이유는 없었지만 패더러를 응원하지 않을 한 가지 이유는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 2019. 7. 16.
내가 읽은 쉬운 시 127 - 안도현의「서울로 가는 전봉준(全琫準)」 *사진 출처 : SBS 「녹두꽃」 홈페이지 텔레비젼 연속극 「녹두꽃」이 끝났다. 살아있는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지난 몇 달 동안의 주말 저녁을 즐겁게 했다. 고부 왈패였다가 동학군의 별동대장으로 변신한 가공 인물 백이강을 연기한 조정석의 매력이 단연 압권이었다. 거기에 전봉준이라는 묵직한 역사적 실재 인물을 맡은 최무성과 고부 군아의 이방이며 백이강의 아버지 백가(박혁권), 전주 여각의 행수 최덕기(김상호), 황진사 황석주(최원영) 등도 모두 현실감 있게 창조된 인물이었고 연기였다. 무엇보다 가슴을 뜨겁게 했던 건 '녹두꽃'으로 상징되는 그 시대의 전사들이었다. 구한말이라는 격변의 시대, 외세의 침탈과 무능한 권력의 폭정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고 동학으로 인즉천(人卽天)이라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 2019.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