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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전시회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덕수궁 대한제국 역사관 전시실에서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특별전(09. 21. ~ 11. 24.) 이 열리고 있다.대한제국 황제의 상차림과 구한 말 서세동점의 시기에 변화된 대한제국의 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함께 요리를 공부하는 동료들과 전시회를 보러 갔다. 10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라 입장료도 공짜였다. 황제(왕)는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었을까? 왕의 식사는 잔치 대의 대전어상(大殿御床)과 일상생활에서의 수라상으로 구별되었다. 대전어상은 외국 칙사를 맞이하거나, 왕이나 대비의 생일이나 국혼(國婚) 등의 궁중 연회 때 차리는 상이다. 당연히 가장 화려하고 특별할 수밖에 없겠다. 정조가 생모인 혜경궁 홍 씨의 회갑 때 차린 잔칫상의 경우, 약 45cm(1척5촌) 높이로 고배(高排:쌓아올림)한 음.. 2019. 10. 31.
결혼 35주년 입니다. 무교동 길을 걷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앞 쪽에 거짓말처럼 당신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우연이었습니다만 제겐 그것이 놀라운 우연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같이 활동하던 동아리 모임에서 유난을 떨던 평소의 치기를 접어둔 채 당신에겐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으니까요. 아무 낌새도 채지 못한 당신은 버스와 함께 떠나버렸고 저는 빈 보도블록을 발로 쓸며 정류장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바보 같은 경험에 대한 자책이 용기를 촉발시켰을까요? 얼마 뒤 망설임 끝에 저는 투박하게나마 저의 마음을 당신에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결혼35주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그날 무교동에서, 그보다 먼저 당신과 함께 하던 여름날의 농활이나 겨울철의 흰눈학교에서, 아니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 2019. 10. 28.
잘 먹고 잘 살자 60 - 해물잡채 *위 사진 : 『음식디미방』으로 재현한 잡채(황광해 사진) 기록상 잡채(雜菜)라는 음식이 등장한 것은 오래 되었다. 1630년 신흠(申欽)이라는 사람이 쓴 글에 임금에게 잡채나 침채(오늘 날 김치), 더덕(沙蔘) 등을 바치고 높은 벼슬을 얻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를 두고 '잡채상서(雜菜尙書)'니 '침채정승(沈菜政丞)'이니 ‘사삼각노(沙蔘閣老)’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음식으로 벼슬을 얻었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임금이 반정으로 물러난 광해군이고 보면 반정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앞선 권력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들어간 기록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런 문제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약 400년 전에 잡채라는 음식이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다만 당시.. 2019. 10. 26.
푸드 스타일링 속 '니부고리' "야, 공구실 가서 '니부고리' 가져와!" 트럭 엔진 덮개를 열고 수리를 하던 고참병이 내게 뜬금없는 지시를 내렸다. "???… '니부고리'가… 뭡니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되묻자 그가 들고 있던 쇠공구를 내게 던졌다. "대학 다니다 온 새끼가 '니부고리'도 몰라? 눈썹이 휘날리도록 빨리 안 달려가?" 입대를 하여 짧은 차량수리 교육을 받고 막 자대에 배치받은 참이었다. 니부고리에 대학을 갖다 붙인 그의 말은 터무니 없는 것이었지만 나는 무작정 공구실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불운은 공구실에서도 이어졌다. 공구실 담당이 하필이면 '떨어진 낙엽도 조심해서 밟는다'는 말년 병장이었다. 니부고리를 찾으면 담당이 알아서 내줄 걸로 기대했지만 그는 자리에 앉아 귀찮다는 표정으로 한마디를 던졌을 뿐.. 2019. 10. 24.
잘 먹고 잘 살자 59 - "라따뚜이" 「라따두이」는 픽사(PIXAR) 애니메이션에서 만든 영화 제목이다. 요리사를 꿈꾸는 절대미각의 생쥐와 파리 최고급 식당 주방에서 일하지만 요리를 못해 구박만 받으며 청소부로 일하는 청년이 힘께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이다. 픽사가 만드는 애니메이션 영화 - 「라따뚜이」외에도 「토이 스토리」시리즈, 「니모를 찾아서」, 「카」시리즈, 「UP」 등등 - 은 우선 믿음이 간다. 감동과 여운이 있다. 아내와 나는 그중에서도 「UP」을 가장 좋아한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어릴 적 꿈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의 이야기. 그에게 어른의 시간이란 넥타이를 몇 번 매고 풀면 지나가 버리는 단조롭고 덧없는 것이었다. 흔히들 만화영화를 어린이용이라 여겨서 관람 대상에서 쉽게 제외한다. 하지만 정확.. 2019. 10. 21.
내가 읽은 쉬운 시 149 - 감에 관한 시 두 편 경북 청도가 고향인 친구가 유명한 청도반시를 보내왔다. 받고 난 후 며칠을 밀봉한 상태로 후숙을 시켜 홍시로 먹었다. 친구는 올 유난히 병충해가 심해 감 상태가 별로라고 했지만 충분히 맛이 있었다. 감을 먹으며 아내와 학창 시절에 자주 읽던 오래된 시를 떠올렸다. 올해 외식 문화의 한 특징이 뉴트로(NEW-TRO:복고풍) 감성이라더니 시도 그런가? 김준태며 김남주, 오래간만에 빛바랜 시집을 뒤적여 보았다. (하긴 요란스럽고 수상한 이즈음의 시절이 아내와 내가 학창시절에 보던 풍경을 닮지 않았는가. '그 시절'을 머릿기름 바르 듯 미끈하게 지나온 자들의 한물간 삭발 코스프레라니!)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2019. 10. 20.
내가 읽은 쉬운 시 148 - 도종환의 「길」 햇살 가득한 아침 후미진 골목길에서 마주친 나팔꽃. 가파른 담장을 끌어안고 영롱한 빛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억센 발톱과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살풋한 바람에도 온몸 흔들리며 이룩한 나팔꽃의 아침이 눈부셨다. 살가운 위로와 격려, 속 깊은 삶의 잠언 같은 것이 잠시 서성이는 내 시선을 거슬러 가만히, 그러나 당당히 전해져 왔다. 저 나팔꽃과 어울리려면 나는 어떤 목소리로 살아야 할까?' 우리 가는 길에 화려한 꽃은 없었다 자운영 달개비 쑥부쟁이 그런 것들이 허리를 기대고 피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빛나는 광택도 내세울만한 열매도 많지 않았지만 허황한 꿈에 젖지 않고 팍팍한 돌길을 천천히 걸어 네게 이르렀다 살면서 한 번도 크고 억센 발톱과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2019. 10. 18.
내가 읽은 쉬운 시 147 - 김기택의「자전거 타는 사람 」 타요버스를 비롯한 자동차와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공룡, 그리고 여름철 물놀이를 거쳐 요즈음 나의 절친 손자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단연 자전거 타기이다. 여전히 그네나 미끄럼틀, 흔들그물도 좋아하지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주변 아파트나 공원까지 활동범위를 넓혀 일종의 '놀이터 호핑 HOPPING'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조금씩 다른 구조의 놀이터나 공원을 찾아 제법 먼 길을 가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 날이면 평소와는 달리 대개 초저녁에 곯아떨어지곤 한다. 친구가 자전거를 타면 나는 마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을 호위하던 북측 경호원처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친구의 옆을 긴장해서 쫓아다녀야 한다. 느닷없이 방향을 바꾸어 차도로 향하는 위험한 장난을 즐기기 때문이다. 친구의 자.. 2019. 10. 16.
내가 읽은 쉬운 시 146 - 정희성의「너를 부르마」 조국 법무부 장관이 '결국' 사퇴를 했다. 왜 오늘이었을까 하는 사퇴의 시점에 대한 배경이나 과정에 대해선 아는 게 없으나 그에게 더 버텨달라고 주문한다면 너무 혹독하고 잔인할 것도 같다. 정치공학에 앞서 사표 발표까지 따라온 젊은 세대에 대한 그의 사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가 우리 시대의 유일한 '은수저'이거나 '은수저의 대표'라도 된다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은수저'이기나 한 것일까? 그 문제만 가지고도 정작 사과를 해야 할 자들은 거만스레 고개를 쳐들고 있는데······. 그의 지나친 겸손이 애잔하다. 법무부장관이기에 앞서 개인 조국 씨에게 그가 견디고 있는 아픔에 위로를 보내고 싶다. 조국의 사퇴와 상관없이 검찰개혁은 진행되어야 한다는 원칙론이 위안이 되기엔 그의 등장에서 사퇴까지 우리 .. 2019.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