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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2

인생은 이벤트 학창 시절 늘 유쾌함이 가득했던 딸아이가 '인생은 이벤트'라고 한 적이 있다. 특별함은 특별하게 만들어야 생긴다는 뜻이었다. ( *이전 글 : https://jangdolbange.tistory.com/169 ) 아내는 며칠 전부터 보름 준비를 했다. 오곡밥에 들어갈 재료와 말린 나물을 체크하고 부족한 것은 장을 봤다. 어제는 팥, 수수, 차조, 찹쌀, 검은콩이 들어간 오곡밥과 고사리, 가지, 호박오가리, 도라지, 토란대, 취나물, 무나물, 곤드레나물, 콩나물의 아홉 가지나물을 만들며 보냈다. 보통 때는 내가 부엌일을 담당하지만 명절 음식은 아직까진 아내가 맡아서 한다. 옛 음식들은 준비에서부터 복잡하고 조리 과정도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옛말에 말린 채소를 보름에 삶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 2021. 2. 26.
죽음에 대하여 구순(九旬)을 맞은 아버지에게 한 아들이 축하의 말을 전했다. "아버지 건강하셔서 백수(白壽)를 누리세요." 그 아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뭔가 찜찜한 아버지의 기분을 눈치챈 다른 아들이 나섰다. "아버진 건강하시니 백오십 살까지 전혀 문제없으실 겁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얼굴이 펴졌다. "암 그래야지. 고연 놈 같으니라고. 나보고 앞으로 겨우 십 년만 더 살라고 하다니······" 친구에게 들은 실화이다. 오래 살고 싶다는 인류의 오랜 꿈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100세 시대를 넘어 200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마냥 황당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1960년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대) 수명은 56세였다. 2020년에는 무려 83세가 되었다. 식단 개선, 의술 발달,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등.. 2021. 2. 25.
다가오는 '퍼펙트 스톰' 토요일. 유치원에 가지 않는 손자 1호와 열두 시간을 함께 노는 날이다.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에 20분쯤 의자에 앉는 것을 빼곤 정말 쉼 없이 놀아야 한다. 좀처럼 지치지 않는 친구는 낮잠이 없다. 낮잠은커녕 저녁잠도 없다. 이번에는 작심을 하고 친구가 지쳐서 그만 놀자고 먼저 말할 때까지 놀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친구가 얼마나 놀 수 있는지 한번 해보자는 쓸데없는 오기 같은 것도 있었다. 그동안 밤이 늦으면 항상 내 쪽에서 먼저 지쳐 은근히 친구에게 잠자리에 들기를 암시, 채근, 강요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마술놀이, 원반 날리기, 책 읽기, 왕비 놀이, 우주선 놀이, 윷놀이, 등등. 저녁때부터는 친구의 요청으로 집안일을 마친 아내도 합류를 해야 했다. 밤 열 시가 넘은 시각에 친구는.. 2021. 2. 23.
형제여! 이야기 하나. 태국 남부의 나라티왓과 얄라, 빠따니의 3개 주를 흔히 '딥 사우스(Deep South)'라고 부른다. 태국은 불교 중심의 국가지만 ‘딥 사우스’의 주요 종교는 이슬람이다. 이슬람 분리주의자들과 갈등으로 인한 인명 피해 소식이 가끔씩 전해지는 곳이다. 그 때문에 여행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여행이라는 인연으로 알고 지내는 한 지인이 이곳을 여행하며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전해주었다. 식당에서 자신의 밥값을 누군가가 대신 내고 간 것이다. 낯선 곳이라 그런 친절을 받을 만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식당 주인은 여행자를 환대하는 것이 마을의 전통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 뒤로도 몇 차례 같은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것이 어느 특별한 개인만의 선의가 아니라 그 지역의 일반적인.. 2021. 2. 21.
영화 『어톤먼트』 한 영상 강좌에서 그 영화(소설) 『어톤먼트(ATTONMENT)』에 대한 감상문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영화 속 최고의 피해자이자 주인공인 "로비"의 입장에서 짧게 적어 보았다. ------------------------------------------------------------------------------------------ “이 거짓말쟁이들! 거짓말쟁이들!” 어머니는 내가 압송되어 가는 차를 두드리며 절규했다. 나는 수갑에 묶여 어떤 위로의 몸짓도 어머니에게 전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절절한 외침은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그렇게 영문도 모르는 채 강간범이 되었다. 나는 권력과 부를 가진 집안에서 일하는 가정부의 자식이었을 뿐이고 현장 부재 증명을 위한 나의 설명과 변명은 무력했.. 2021. 2. 17.
시대의 이야기꾼, 별이 되다 나는 내가 직접 전령사가 되고 싶었다. 한 손에는 만고강산을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그리고 거리의 아우성을 함께 몰아서 치는 징을 들고 또 한 손엔 바람찬 산마루턱에 봉화를 당길 횃불을 들고 어기차게 달리는 옛이야기의 주인공 말이다. 담아, 우리 집안이 본래 어떤 집안인 줄 아느냐? 우리 집안은 비록 화려하진 못했으나 한없는 이야기꾼의 집안이었음을 너희들에게 상기시키고 싶구나. (···) 한겨울 가루눈이 지향없이 내리는 깊은 밤 , 주린 속은 쓰리고 옛이야기는 달리고 화로의 불길마저 시들어가는 밤이면 울타리 너머 수수밭을 달리는 바람소리가 유난히 스산했다. 이럴 때면 할머니는 백두산 준령을 넘나드는 독립군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저 바람소리는 독립군의 말 달리는 소리라고. 왜놈 병정을 쥐 잡듯 하고 묏돼지 .. 2021. 2. 16.
눈 내린 서울의 궁궐과 능 조선의 궁궐은 외국의 예에 비해 소박한 편으로 결코 화려하지 않다. 백성들이 보아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화려함이라고나 할까. 그 이유는 조선 건국의 이데올로기를 제시하고 한양의 도시 설계와 경복궁 건립을 주도한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찾을 수 있다. 궁원 제도가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 없게 될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검소란 덕에서 비롯되고 사치란 악의 근원이니 사치스럽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할 것이다. 궁궐 건축에 대한 정도전의 이런 정신은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 우리 궁구.. 2021. 2. 14.
코로나 시대에 설날 보내기 책과 영화 속 『82년생 김지영』은 친정어머니로 빙의를 해서 시어머니에게 갑자기 속말을 털어놓는다. 시가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다. "사부인도 명절에 딸 보니 반가우시죠? 제 딸도 보내주셔야죠. 시누이 상까지 다 봐주고 보내시니 우리 지영이는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영화와 책 『B급 며느리』속 김진영은 한걸음 더 나간다. 아예 명절(제사였던가?)에 시집에 가지 않는다. '원래 그런 것'이라 거나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는 논리에 당당히 맞선다. "시댁 가면 저는 손님입니다. 손님 대접을 해주세요." "제사에 며느리가 꼭 가야 되는 거야? 오빠 할아버지잖아?" "도대체 며느리가 무엇이길래 반대로 시부모님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주고받는 것일까?" "오빠는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 2021. 2. 12.
'손자체'의 입춘축 좋은 일 많이 생기길! 따뜻한 봄 햇볕 속 너의 웃음소리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길!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봄'은 만나지 말기를! 2021.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