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모처럼 손자들과 함께 하는 일요일이라 밖에서 보낼까 했는데 비가 내렸다. 집안에 갇혀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하다가 비가 설핏해졌을 때 손자와 축구공을 들고 아파트 단지 내 축구장으로 나갔다. 손자와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의 공놀이 시중을 들어주며 뛰어다니니 비와 땀이 섞인 물기로 몸이 촉촉해져 왔다.
오늘 아침 하늘은 시치미를 떼 듯 구름이 감쪽같이 다 사라지고 없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 아내는 등교길 손자에게 한 겨울 외투를 다시 꺼내 입혔다. 손자는 두꺼운 옷이 버겁다고 왼고개를 치다가 마지못해 입고 갔다.
봄비 온다 공손한 말씨의 봄비 온다
먼 산등성이에 상수리나무 잎새에
송홧가루 날려 내리듯 봄비 온다
네 마음에 맴도는 봄비 온다
머윗잎에 마늘밭에 일하고 돌아오는 소의 곧은 등 위에
봄비 온다 어진 마음의 봄비 온다
- 문태준, 「봄비」-
낮에 산책을 나가니 손자의 왼고개가 이해가 갈만하게 날이 화창했다. 어제 우리의 외출을 막는다고 투덜거렸던 봄비는 '공손'하고 '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한결 더 밝혀 놓았다. 나뭇가지에는 연두빛 새싹이 앙증맞은햇병아리 부리처럼 돋아나고, 분홍색, 흰색, 노란색꽃들은 여기저기 방울방울 떠다닌다. 앞다투어 피어난다는 말, 봄비가 다녀간 뒤에는 진부함을 떨치고 생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