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한국
여인들만 '사는' 칠궁(七宮)
장돌뱅이.
2023. 4. 4. 15:31
칠궁(七宮)은 경복궁 뒤쪽 청와대 가까이 있어 예전에는 사전 예약을 해야 방문이 가능했는데, 얼마 전 청와대에 들어오게 된 양반이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아무 때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은 곳이 되었다. 그런다고 그 양반에게 '덕분'이라는 표현은, 글쎄 ··· 별로 쓰고 싶지 않다.
경복궁역에서 나와 칠궁에 다다르기 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가 있다.
2016년 늦가을에서 2017년 봄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자주 왔던 곳이다.
낯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모여 청와대 쪽을 향해 "방 빼!"라고 외치곤 했다.
그 기억이 생생한데 세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 씁쓸하다.
칠궁은 조선시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追尊)된 이들을 낳은 생모이면서 왕비가 아니었던 후궁 일곱 분의 사당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일곱 궁의 동쪽에서부터 아래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육상궁(毓祥宮) :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
연호궁(延祜宮) : 추존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
덕안궁(德安宮) : 영친왕의 생모 순헌황귀비 엄씨
경우궁(景祐宮) :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
선희궁(宣禧宮) :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
대빈궁(大嬪宮) :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
저경궁(儲慶宮) : 추존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
원래는 육상궁만 있었다가 1908년에 저경궁, 대빈궁, 연우궁, 선희궁, 대빈궁, 경우궁을 합사(合祀)하여 육궁이 되었고, 1929년 덕안궁이 이곳으로 옮겨와 칠궁이 되었다.
송죽재(松竹齋)의 '소나무와 대나무'는 변치 않는 절개를 상징한다.
육상궁을 지키는 관원들의 거처였다.
풍월헌(風月軒)은 송죽재와 같은 건물에 있다. 역시 관원들의 거처다.
풍월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淸風明月)'로 정신을 깨끗하게 하고 고상하게 가진다는 뜻이다.
송죽재와 풍월헌 앞마당에 말에서 내리는 하마석이 있다. 최근에 만든 듯 새물내가 난다.
냉천정(冷泉亭)은 영조의 어머니가 제삿날에 재계(齋戒)하며 제를 준비하던 곳이다.
냉천은 '차가운 샘'이라는 뜻이다. 순조가 썼다는 전서체의 현판은 단정하고 깔끔하다.
과감하게 단순화한 기교에서 현대적인 느낌도 준다.

냉천정 뒤쪽에는 이름에 걸맞게 '냉천'이라는 샘이 있다.
냉천의 샘물은 흘러내려 냉천정 앞에 네모난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의 돌에 자연(紫淵)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름처럼 자줏빛이 감돌거나 깊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조는 즉위 후 효장세자(孝章世子)를 진종으로 추존했다. 정조는 효장세자의 양자였다. 영조는 세손인 정조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지만 명색이 죄인인 사도세자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을 수 없어 오래전에 9살의 나이로 죽은 이복 큰아버지 인 효장세자의 양자로 만들었다.
연호궁(延祜宮)은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를 모신 곳이다. '연호'는 '복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현재 육상묘와 연호궁 현판은 한 건물에 걸려 있다.
연호궁이 앞쪽 추녀 밑에 걸려 있고 육상묘는 그 뒤쪽에 걸려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육상궁(毓祥宮)의 육상은 '상서로움을 기른다'는 뜻으로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곳이다. 예전에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이 바로 궁중 나인에서 숙종의 후궁이 된 숙빈 최씨다. 영조는 어머니의 신분 때문에 재위 내내 정적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았다고 한다.
덕안(德安)은 '덕이 있고 편안하다'는 뜻으로 고종의 후비이자 영친왕 이은의 생모인 순비 엄씨의 신주를 모셨다. 현판의 덕(德) 자는 속자로 써 심(心) 자 위에 '일(一)'자를 뺐다.

덕안궁의 뒤쪽에는 세 채의 사당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사당을 바라보며 맨 왼쪽이 있는 저경궁(儲慶宮)은 추존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의 사당이다.
원종은 조선 제16대 국왕인 인조의 아버지로 인조반정으로 즉위한 인조에 의해 대원군에서 왕으로 추존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 왕세자를 겸임하지 않고 왕으로 추존된 최초의 인물이라고 한다.
대빈궁(大嬪宮)은 텔레비전 연속극으로 수 차례 만들어진 희빈 장씨, 흔히 말하는 '장희빈'의 사당이다. 조선 19대 왕 숙종의 빈이며 20대 왕 경종의 생모이다. 대빈은 '큰 부인'이라는 의미이다.
(*이전 글 : 서오릉 - 숙종과 여인들 )
서오릉 - 숙종과 여인들
장희빈(희빈장씨, 장옥정)만큼 우리나라 사극에 많이 오른 인물도 드물 것이다. 요즈음(2010년) 인기 드라마 ‘동이’에도 그녀는 극의 한 축을 지탱하는 비중 있는 인물이다. *위 사진 : 연속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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