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한국

아차산 길

장돌뱅이. 2024. 4. 26. 06:43

아차산은 서울 동쪽 경기도와 경계에 있다.
산자락을 따라 들어선 주변 마을에서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펼쳐져 정상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나는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올라 광나루역 쪽으로 내려왔다.
높이 287미터의 야트막한 산이라 정상을 다녀오는데 혼자서 천천히 걸어도 채 2시간이 안 걸렸다.

정상부의 능선과 전망대에서는 조망이 탁 트여서 시원하다.
동쪽으로는 한강과 검단산이 건너다 보이고 서쪽으로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올 때 일부 구간은 '아차산동행길'을 따라 걸었다. 
나중에 아내와 함께 걷기 위한 사전답사였다. 데크로 되어 있어 평탄한 길이었다.

고구려정
검단산쪽 조망
멀리 청계산, 관악산, 남산을 배경으로 한 서울 시내가 보인다.

며칠 뒤 아내와 함께 다시 아차산을 찾아 미리 답사한 아차산 동행길과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걸을 때 나는 아내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아내의 오른쪽이나 왼쪽 어깨 살짝 뒤에서 걷는다.
가끔은 조금 빨리 앞서가 앞길의 상태를 살펴보고 뒤에  오는 아내를 기다리기도 한다.

천천히 와
천천히 와
와, 뒤에서 한참이나 귀울림이 가시지 않는
천천히 와

상기도 어서 오라는 말, 천천히 와
호된 역설의 그 말, 천천히 와

오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기다리는 마음이 건네준 말
천천히 와

오는 사람의 시간까지, 그가
견디고 와야 할 후미진 고갯길과 가쁜 숨결마저도
자신이 감당하리라는 아픈 말
천천히 와

아무에게는 하지 않았을, 너를 향해서만
나지막이 들려준 말
천천히 와.

- 정윤천, 「천천히 와」 -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Spring Bossa

원래는 광나루역에서 시작해서 기원정사를 거쳐 아차산역으로 내려올 생각이었으나 아내가 거리가 너무 짧다고 하여  길을 되짚어 다시 광나루역으로 내려왔다.

왕복 1시간 정도면 충분할 거리였지만 중간에 해찰을 부리느라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차산카페에선 커피에 빵을 먹으며 햇살이 송홧가루처럼 노랗게 쏟아져내리는 숲을 내려다보고 거의 다 내려와선 아차산숲속도서관에 들려 책을 보기도 했다.

해찰은 짧은 거리를 길게 만들어 준다.
사는 일에도 그렇게 느긋해지고 싶다. 
단순하되 그 단순함에 충실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