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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예장공원 2

장돌뱅이. 2024. 5. 10. 22:38

명동역 1번 출구를 나가 예장공원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쪽 담에 "기억의 터"라는 큰 글자가 보인다.
거기서 안내 표지에 쓰여진 대로 결코 '할머니들이 살아온 세월보다 더 멀지 않은 길'만큼 걸어가면
"기억의 터"가 나온다. 예장공원을 가로질러 남산연결다리를 건너면 된다.

"기억의 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그 아픔을 기리는 공원이다.
2016년에 국민 1만9755명의 모금으로 조성되었다.

원 '기억의 터' 조감도

원래 '기억의 터'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의 이름을 새긴 (야만의 역사를 직시하는) '대지의 눈'과, 할머니들과 시민들을 연결한다는 의미의 세상의 배꼽'이란 조형물이 있었다. 

철거된 '대지의 눈'
철거된 '세상의 배꼽'

그러나 공원을 설계하고 조형물을 제작한 임옥상 화백이 성추행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후  작년에 그의 작품들은 모두 철거되었다.  그것이 임 씨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 집단의 의지를 모은 작품이라는 성격이 짙기 때문에 철거를 재고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요청이 있었으나 서울시는 철거를 강행하였고 조만간 공원을 재조성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꼽이 사라진 현재의 '세상의 배꼽' 터

'기억의 터'는 일제가 남긴 남산 일대의 어두운 역사를 돌아보는 다크투어 경로인 '국치길'에 포함된다.
일제의 조선 침략을 주도했던 통감관저가 있던 자리이자,  1910년 8월 22일에는'경술국치(庚戌國恥)'인 '한일강제병합이 체결된  현장이 있기 때문이다.
1926년 조선통감부는 조선총독부로 이름을 바꾸어 광화문 쪽으로 옮겨 갔다.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는 일제의 조선 병탄의 발판을 닦은 자다.
일제는 그의 동상을 이곳에 세웠던 모양이다.
광복 직후 파괴되었으나 ‘남작 하야시 곤스케 군상’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잔해가 2006년에 발견됐다. 서울시는 이 표석을 거꾸로 세우고 ‘거꾸로 세운 동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때 인류의 역사를 '거꾸로 세웠던' 야만에 내린 역사의 형벌이 될 것이다. 

거꾸로 세운 동상

일제 강점 36년이 남산과일대에 남긴 흔적과 상처는 다양하고도 깊다. 
"흔히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라 하여 나라가 망해도 국토는 그대로 있다고 하지만, (남산에서 보듯) 패망한 나라의 국토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처럼 제 모습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우리가 '국토'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땅덩어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고 부대끼며 살아온 동반자로서의 삶의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졸저, 『아내와 함께 하는 국토여행』중에서)

기억6 앞쪽에는 '조선총독부 관사 유구.

2021년에 개관한 이회영기념관은 예장공원 초입에 있다. 이회영 기념관이라 했지만 이회영과 그의 다섯 형제들, 그리고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까지 모두를 기리는 공간 같았다.
들어가는 문도 6형제를 상징하는 6개의 문으로 되어 있었다.

조선 최고 부자 집안의 이회영 형제들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전 재산을 처분하고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를 등을 세우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시사여귀(視死如歸) '- 이회영은 죽음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여긴다고 했다.
독립투사로서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하룻밤 사이에 두 자식을 언 땅에 묻기도 했던' 이회영은 고문 끝에 옥사했고 다른 형제들은 항일전선의 도정에서 병이 들어 죽고, 굶어서 죽었다. 
이회영 여섯 형제 중 유일하게 독립을 맞은 사람은 다섯째인 이시영이었다.
임시 정부 법무부장을 지낸 그는 김구와 함께 귀국하여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김대중 대통령 때 국정원장을 지내 이종찬과 5선의 국회의원 이종걸이 이회영의 손자다.)

기념관에는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이회영이 그린 묵란 4점, 친필편지봉투, 신흥무관학교 교관 및 학생들의 사진과 약력, 청산리전투에 사용되었던 소총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이 쓴『서간도시종기』의 육필원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70년대에『민족운동가 아내의 수기』라는 제목의 작은 문고판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자료가 많은 전시관이라기 보다는 이회영 가족들을 생각해보며 걷는, 마음이 서늘해지는 '기념 공간'이었다.

작년에 육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철거 혹은 이전한다고 하여 논란이 있었다. 
홍범도 장군은 '육사의 정체성과 독립투사로서의 예우를 동시에 고려해' 육사 밖으로 이전하고,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은 교내 적정한 장소로 옮긴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2018년 3월 1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 모습이다.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순서다.

*출처 : 연합뉴스

이럴 때 그들이 말하는 '육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는 독립과 독립운동이 유일한 목표이자 '정체성'이지 않았을까?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난의 길을 자처한 영웅들을 온갖 핑계를 들이대며 걸핏하면 역사 밖으로 내몰고 싶어 하는 저들의 '정체성'이 나는 오히려 궁금해진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다.
우리는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