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술만 더 먹어보자

라면 이야기

장돌뱅이. 2012. 3. 7. 17:26

내가 음식을 만든다고 할 때 가장 놀란 사람 중의 한 분이 형수님이시다.
왜냐하면 형수님은 아내보다 먼저 나를 알았던 분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학창 시절부터니 내 본바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장돌뱅이가 음식을 한다는 아내의 말을 들은 형수님의 첫마디는 "삼춘은 라면도 안 끓이는 사람이잖아요."였다.

라면····· 그랬다.
끓는 물에 면과 수프를 넣으면 단 3분이면 되는 요리를 나는 남이 해주지 않으면 먹질 않았다. 그렇지만 음식 만들기에 게으른 나의 이야기야 벌써 여러 번 반복한 것이니 또다시 길게 꺼낼 필요는 없겠다.

어린 시절 내게 라면은 짜장면과 함께 최고의 음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라면이 최초로 시장에 나온 때는 1963년이고 가격은 10원이었다고 한다. 내가 처음 라면을 맛본 게 67년인가 68년이었다.
처음 맛본 라면은 가히 천상의 맛이었다. 특히 국물 맛은 지금까지 입안에 생생할 정도이다.
나와 동갑인 아내도 그 시절의 라면 맛을 최고로 친다.
입맛 장악을 위해 그동안 지속적인 연구와 제조기술의 발달이 있었을 것이니 옛 라면에 비해 요즈음의 라면 맛이 실제로는 월등하겠지만  그 시절의 라면 맛은 시간과 추억이 주는 프리미엄을 더하여 아내와 나의 기억 속에서 한껏 부풀어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라면에 대한 갈망이 수그러든 것은 고등학교 때 한 달쯤인가 거의 주식으로 라면을 먹고 난 뒤였다.
몸에 안 좋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내가 자청해서 아침저녁으로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다.
물리도록 라면을 먹고 나니 그 뒤로는 라면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게 되었다.ㅍ그 이후 일직사관의 눈을 피해 외진 창고 구석에서 탄통에 라면을 끓여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던 군바리 시절을 제외하곤 별로 라면에 끌려본 적이 없다.
지금은 내 손으로는커녕 아내가 끓여준다고 해도 라면엔 시큰둥하게 되었다.
다만 여행 중이거나 캠핑의 아침에 빠른 행동식으로 라면을 먹곤 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라면에 관한 한 세계 최강국이다.
2010년 한 해 동안 라면을 약 34억 개를 소비해서 중국(423억 개), 인도네시아(144억 개), 일본( 53억 개), 베트남(48억 개), 미국(40억 개)에 이어 절대량에서는 6위이지만 일인당 소비량은 세계 최대가 되었다. 국민 일인당 한 해동안 70개 이상의 라면을 먹은 것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라면시장의 규모는 무려 2조 원에 육박한다.

지난 주말 코미디언 이경규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꼬꼬면을 먹어보았다.
칼칼함이 스민 닭곰국 맛이었다. 오래간만에 먹어본 라면 맛이 나쁘지 않았다.
주위에 이야기했더니 꼬꼬면은 옛날이야기이고 이제는 '나가사끼짬뽕'이 대세라고 한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어떤 기상천외한 라면이 나오건, 라면을 갈망하던 고등학교 이전으로 내 입맛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라면도 못(안) 끓이던 이 손으로 이젠 멸치 육수 우려내서 국을 끓여 밥 말아 한 끼 정도는 챙겨 먹을 줄 알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