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술만 더 먹어보자

이제 죽은 먹입니다

장돌뱅이. 2012. 8. 11. 06:14

*아내가 좋아하는 달걀파죽과 버섯죽

오래전 아내의 맥을 짚은 알고 지내던 한의사가 "부인에게 죽도 안 먹이십니까?" 하는 '막말'을 들이댔다. 아내의 맥이 너무 약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농담조로 한 말이었다.
나는 아내의 약한 기력이 나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 같아 마음이 뜨끔했다.

몇달 전 무슨 이야기 끝에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죽 싫어하잖아?"
아내가 즉각적으로 답을 했다.
"아니야, 나 죽 좋아해."
이런 30년을 같이 살고도 아내의 취향도 몰랐다니!
부부란 일생을 두고 알아가야 할 사이라고 상투적 변명을 하기엔 내가 무심하긴 무심했던 것같다.

사죄하는 의미로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마다 죽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인터넷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죽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면서는 아예 죽에 관한 책까지 사 왔다.
이제까지 만든 죽 중에 아내는 달걀죽을 제일 좋아했다.

나도
언제쯤이면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다가
그대 상처 깊은 그곳까지
온몸으로 스밀
죽, 한 사발 되랴

- 박규리, 「죽 한 사발」-

"한의사 양반! 저, 아내에게 죽은 먹입니다. 그것도 이제는 제가 지어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