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아내의 맥을 짚은 알고 지내던 한의사가 "부인에게 죽도 안 먹이십니까?" 하는 '막말'을 들이댔다. 아내의 맥이 너무 약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농담조로 한 말이었다. 나는 아내의 약한 기력이 나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 같아 마음이 뜨끔했다.
몇달 전 무슨 이야기 끝에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죽 싫어하잖아?" 아내가 즉각적으로 답을 했다. "아니야, 나 죽 좋아해." 이런 30년을 같이 살고도 아내의 취향도 몰랐다니! 부부란 일생을 두고 알아가야 할 사이라고 상투적 변명을 하기엔 내가 무심하긴 무심했던 것같다.
사죄하는 의미로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마다 죽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인터넷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죽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면서는 아예 죽에 관한 책까지 사 왔다. 이제까지 만든 죽 중에 아내는 달걀죽을 제일 좋아했다.
나도 언제쯤이면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다가 그대 상처 깊은 그곳까지 온몸으로 스밀 죽, 한 사발 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