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태국
2024년 10월 푸껫 4
장돌뱅이.
2024. 10. 26. 09:00
"창밖에는 비 오고요. 바람 불고요."
송창식의 노래였던가? 아니면 이장희?
아침에 커튼을 여니 그런 풍경이었다.
베란다로 나가 의자에 누워 비 내리는 풍경과 소리를 보고 들었다.
예정대로라면 국립공원인 수린섬(Koh Surin)으로 스노클링을 가는 날이었다. 아내와 함께 아무리 수영장 죽돌이 죽순이라고 해도 푸껫까지 왔으니 여행 중간에 인근 섬을 한번 다녀오기로 했던 것이다.
수린섬은 시밀란섬처럼 보호를 위해, 그리고 바다가 잔잔해지는 매년 10월 15일부터 다음 해 5월 15일까지만 개방을 하여 마침 시기적으로도 적절했다. 첫 숙소를 푸껫 북쪽으로 잡은 이유도 조금이라도 배를 타는 곳까지 육상 이동 거리를 줄여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푸껫은 초등학교 시절 이래 한동안 강력한 '친 푸껫파'였던 딸아이 덕분에 꽤 여러번 방문한 터라 피피섬이나 제임스본드섬, 시밀란, 팡아만, 끄라비 등 푸껫 주변의 알려진 섬과 바다를 대략 훑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린섬은 처음 듣는 데다가 (주관적인 평가겠지만) 누군가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속을 가진 섬이라고 해서 호기심도 일었다.
푸껫에 온 이래 연일 날씨가 꾸물거려 수린섬 투어 예약을 미루어야 했다.
예약 마지노 선인 어제 오후에야 최종적으로 포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날을 맑아야 물 속 풍경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아침 비바람을 보며 나는 아내에게 그 결정이 무슨 선견지명이라도 되는 양 으스댔다.
"거 봐! 안 가길 잘 했지!"
하지만 그래봤자 가지 못한 아쉬움에 대한 위로는 못되었다.
놓친 열차는 아름다운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수린섬은 사전 예약을 하면 캠핑도 된다고 한다.
다음에 다시 오면 아예 하룻밤을 지내보는 것으로 정리했다.
바다가 기르는 상처
만약
저 드넓은 바다에
섬이 없다면
다른 그 무엇이 있어
이 세상과 내통할 수 있을까
- 이홍섭, 「섬」-
아침은 노란 바미면이 들어간 물국수를 먹었는데 맛이 별로였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도 만들 때마다 맛이 다른 법이니까.
수린섬 대신에 수영장.
"매일 똑같은 사진을 뭐 하러 찍어?"
아내가 말에 "아니야. 매일 점점 더 예뻐지잖아." 하는 아부로 대꾸하며 놀았다.
아내여, 이럴 때 '아부는 충성의 발로(發露)'임을 믿어주시라.
점심은 마이카오 해변의 Lak Mai Khao Seafood 식당에서 했다.
구글이나 트립어드바이저에서 평이 좋아 선택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식당 외관은 엉성을 넘어 초라해 보였지만 새우살을 다져 튀긴 텃만꿍과 솜땀은 제대로였다.
사장 겸 요리사인 듯한 초로의 여인은 숙소 직원만큼 영어도 잘했다.
우리는 도착 이튿날 갔던 식당 Basil의 형편없는 음식과 비교하며 그곳에 대한 '뒷담화'를 했다.
갈 때는 숙소의 버기카를 타고 갔지만 돌아올 때는 해변을 따라 걸어서 왔다.
구름이 두터워 햇빛은 없었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 걷기에 좋았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나를 괴롭히던 비염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아내는 검은 얼굴빛과 함께 비염 증상 변화도 나의 전생이 동남아인이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