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단상
항동철길 주변
장돌뱅이.
2024. 11. 20. 10:04
항동철길을 가기 위해선 지하철 7호선 온수역이나 천왕역에서 내리면 된다.
아내와 나는 온수역 - 성공회대학교 - 푸른수목원 - 항동철길 - 천왕역의 순서로 걸었다.
성공회대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구드윈관이 있다.
신학교육을 위해 헌신한 구드윈(Charles Goodwin) 신부를 기리기 위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1936년에 건축된 구드윈관은 신학원장의 숙소였으나 1970년 이후 유신 독재 치하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젊은이들의 연구집회장소로서 민주화운동의 산실이 되었다.
교정을 지나 야트막한 뒷동산에 오르니 신영복추모공원이 나왔다.
신영복 교수는 경제학자, 철학자이며 서예가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나와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 1968년 통일혁명단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출옥 후 성공회대 교수로 임용되어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동양철학을 강의했다. 이후 2016년 1월 7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오랜 인고의 세월 동안 그는 치열하고 서늘한 사유와 각성으로 깨우친 결과를 쉬우면서도 절제된 글로 발표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소주 '처음처럼'의 글씨체로 알려진 '신영복체'도 수감 생활 동안 이룬 것이었다.
추모공원은 신영복이라는 이름과 생몰년도가 새겨진 작은 넙적바위가 있는 고즈넉한 공간이었다. 주변에 가득 쌓여있는 늦가을의 낙엽이 사색의 분위기를 깊게 했다.
차분한 신영복 글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려 보였다.
추모공원을 나와 걷는 산책로는 '더불어숲길'이라고 했다. 신영복의 책에서 따온 이름이겠다.
그에 맞게 산책로를 따라서 곳곳에 신영복의 시화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우리는 가끔씩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었다.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우리는 작은 기쁨에 대하여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큰 슬픔에 절망해서도 안됩니다. 우리의 일상은 작은 기쁨과 우연한 만남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글을 좋아한다.
주변에 슬픈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자주 말하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를 위로할 때 떠올리곤 한다. 처음엔 큰 슬픔과 작은 기쁨에만 주목을 했는데 나중에는 '우연한 만남' 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연하게 보게된 예쁜 단풍, 나뭇가지를 가볍게 타고 다니는 청설모, 신선한 바람 한 줄기, 나른한 분위기의 찻집, 맛있는 음식 같은 모든 우연한 만남이 어린왕자가 말한 사막 속 눈에 보이지 않는 우물처럼 우리의 일상을 신비롭게 하고 아름답게 하므로.
아래 글 속, 추운 겨울 홀로 갇힌 감옥의 무릎 위로 비쳐든 신문지 크기의 겨울 햇볕 한 장으로도 인생은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가르침은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우연을 놓치고 있는가 돌아보게 한다.
산책로를 계속 따라가니 항동철길이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는바로 옆에 붙어 있는 푸른수목원부터 걸었다. 푸른수목원은 2009년 공사를 시작하여 2013년에 개원한 서울시 최초의 공립수목원이라고 한다. 어떤 나무와 풀들이 있는지 모르는 내게 항동저수지를 품고 있는 넓은 수목원은 그냥 걷기에 편한 공원이었다.
꽃이 사라진 계절이어도 많은 나무들과 단풍으로 여전히 풍경은 아름다웠다.
수목원 숲속에는 작은 도서관도 있었다.
다리도 쉴 겸 들어갔다가 한 시간쯤 책을 읽고 나왔다.
짧은 시간인지라 시집을 꺼내 읽었다.
항동철길은 ‘오류동선’, ‘경기화학선’으로도 불린다.
인근 화학 공장의 화물 운반을 위해 건설되었다는데 공장이 옮겨가면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30분 가량을 철길을 따라 걸었다. 철길 전체 길이가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아내와 나의 세대에게 철길은 아스라한 추억의 장소다.
철로에 침을 발라 대못을 올려놓고 기차가 지나가며 납작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던 기억이나 위험하다고 학교에서는 금지했지만 지름길이고 재미있어서 철길을 따라 하교를 하던 기억.
무엇보다 철길은 유년 시절의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고속도로와 고속버스가 생기기 전 멀리 간다는 것은 거의 기차여행을 뜻했기 때문이다.
여행이라기 보다는 친인척 대소사에 참석하는 부모님을 졸라 따라가는 것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