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단상
겨울 끝까지
장돌뱅이.
2024. 11. 21. 11:30
학교 앞에서 손자저하의 하교를 기다리는 일은 설레는 일이다.
조금 과장을 한다면 연애 때 애인을 기다리는 것 같다.
아내와 딸은 나와 저하가 전생에 연인 사이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저하는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걸어 나오다 나를 볼 때면 갑자기 뒤돌아서서 뒷걸음을 걷거나 반대로 환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달려들기도 한다. 나로서는 두 가지 다 유쾌하다.
어떨 때는 눈에 안 띄게 숨어있다가 교문 앞에서 어리둥절해 이리저리 나를 찾는 저하 등뒤로 다가가 놀래켜 줄 때도 있다. (그런데 이건 한두 번 하고 나니 이제는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해서 나를 찾는 기색도 없이 그냥 친구들과 걸어가곤 한다. 그럴 땐 오히려 내가 놀래서 뒤쫓아가 자수를(?) 한다.)
날이 부쩍 추워졌다.
그래도 손자저하는 얼음 섞인 음료를 좋아한다.
케첩을 뿌린 구슬만 한 닭튀김과 함께 나오는'콜팝'이라는 음식을 사러 학교 앞 가게에 들르는 것은 만날 때마다 '공식'이다. 덕분에 가게 주인은 나와 저하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한 시간쯤 잠시도 쉬지 않고 신나게 뛰어논다.
태권도 학원의 버스 올 시간이 다 되었다고 알려주며 흥을 깨는 것이 미안할 정도다.
그때까지 내가 할 일은 저하와 친구들의 가방을 맡아주는 것뿐이다.
2호 저하는 어린이집 하원 차가 아파트 앞까지 온다.
"할아버지가 마중 온다고 신이 났어요."
하차를 도와주는 선생님이 알려준다. 사실은 나도 신난다.
솔직히 힘이 들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우선 같이 노는 건 즐겁다.
2호는 1호처럼 루틴이 없다.
할머니가 기다린다고 집으로 가자고 하기도 하고 택배 차량 주변을 맴돌기도 하고 놀이터로 가는가 하면 자전거와 차를 타고 먼 공원까지 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