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단상

그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

장돌뱅이. 2024. 12. 27. 10:53

무를 깎아 먹는다
희디흰 무쪽 한입 베어먹으면
이제 잇몸도 무른 것인가
붉은 피 한 점 선연히도 찍혔다
속이 쓰리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끝을 보고서야 아랫배를 쓸어내린다
문득 이것들 다 옛날 그 겨울밤
다름아닌 그대로다
이렇게도 따라가며 닮아가는가
흑백사진처럼 유년을 더듬는 겨울밤
추억은 문풍지처럼 흔들리며 아련하다

- 박남준,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연말이면 이런저런 송년회에서 만나는 과거는 종종 가공의 영역에서 이상화되거나 과장, 왜곡되기 일쑤다. 그것은 힘든 현실에서 도피는 될 수 있지만 치유의 힘이 되지는 못한다.
술이 깨고 나면 멀리 간만큼  다시 돌아와야 하는 피로만 남는다.
추억이 힘을 갖고 위로가 되는 건 '그대로'의 지난날과 '그대로'의 현실을 서로 나누며 공감할 때뿐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