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단상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장돌뱅이. 2024. 12. 31. 11:25

아침부터 방학을 맞은 둘째 손자저하와 하루를 보냈다.
오전엔 밖으로 나가 주변 공원과 아파트 놀이터, 소방서와 단골(?) 아이스크림 가게를 돌았다.
날씨가 좀 풀린 듯하고 집에서 놀면 같은 놀이만 반복하게 되어 모처럼 변화를 준 것이다.

솔직히 오전에 '뺑뺑이'를 돌면 오후엔 지쳐서 낮잠을 좀 자지 않을까 하는 나의 속셈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잔머리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잠시 졸려하는 듯하던 저하는 자기 자신에게인지 나의 속셈을 꿰뚫어 본 것인지 모를 말을 내뱉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안 잘 거야!"
그리고 저녁까지 씩씩하게 놀았다.

헤어질 시간이 되니 매번 구사하는 저하의 '침대축구'가 나왔다.
나의 귀가를 지연시키려는 전술이다. 
갑자기 장난감이나 책을 장황하게 설명한다던지, 냉장고 속 우유나 물을 반드시 할아버지에게 가져다 달라던디지 하는 식으로······ 그러다 종내는 다리를 잡고 매달려서 애틋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 자구 가요. 맨날 맨날." 

방학이 1월 초인 첫째 저하는 연말에도 여전히 바쁘다.
하루종일 있어도 거의 매일 저녁에 축구 연습을 가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많지 않다.
"1월 1일에도 와요?"
저하가 물었다.

"아니? 왜?"
"아!······, 1월 1일에 내가 시간이 제일 많아서요." 축구나 친구들과 노는 일에 더 관심이 많으면서도 첫째 저하는 아내와 내가 그냥 집에 있는 것만으로 뭔가 기분이 좋은 듯했다. 

*장기를 두며 진지해지는 첫째

축구 연습을 가려는 첫째에게 마술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영상으로 찍겠다고 했더니 바쁘다는 엄살을 멈추고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시연을 해주었다.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Grumpy Cat

아내와 나는 축구 연습을 가는 첫째를,  뒤이어 '침대축구'를 마지못해 끝내고 현관까지 배웅을 나온 둘째를 꼬옥 안아주었다.
"일 년 동안 건강하고 씩씩하게 커주어서 고마워. 내년에도  잘 지내자."

많은 생명이 황망하게 스러진 직후라 슬픔이  너무 크다.
한해의 마지막 날이면 주고받던 인사나 덕담도 조심스러워진다.
여전히 웃음과 유머는 우리가 이 세상을 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분노가 그럴까?

'지금 가지고 있지 않는 것에 연연해 하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는 일상의 원칙을 해마다 연말이 되면 다시 다짐하듯 떠올려보곤 한다.
작금의 상황에서는 사회적으로도 그 의미를 적용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