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단상

'용비어천가' 현대사

장돌뱅이. 2025. 1. 23. 10:52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에서 권력을 칭송하는, 몸을 오글거리게 하는 내용의 '용비어천가'가 낯설지 않게 있어 왔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이승만대통령을 찬양하는 노래를 작사했다. 이 노래는 이승만이 권좌에서 쫓겨난 뒤에도 한참 동안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부를 정도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대한나라 독립을 위하여, 여든 평생 한결 같이 몸 바쳐 오신,
고마우신 리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나오리다.

오늘은 리 대통령 탄생하신 날, 꽃피고 새 노래하는 좋은 시절,
우리들의 리 대통령 만수무강을, 온 겨레가 다 같이 비옵나이다.
- 「우리 대통령 노래 」-

그는 (박정희) '대통령 찬가'에도 가사를 지었다.
맑고 순수한 서정을 상징하는 청록파 시인의 재능이 부정한 권력 찬양에 쓰였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젊은 시절 한동안 그의 시를 도외시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의 시를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기준이 바꾸었다기보다 나이가 들면서 기준의 폭을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나 스스로는 이해한다. 
그의 행적은 물론, 그의 시에 대해서도 호불호를 말하고, 또 비판을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시 자체를 내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시를 외면한다는 것은 세상에 흔치 않은 아름다움 하나를 모르고 사는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이므로.)

어질고 성실한 우리 겨레의, 찬란한 아침과 편안함 밤의, 
자유와 평화의 복지 낙원을, 이루려는 높은 뜻을 펴게 하소서, 
아아아 대한 대한 우리 대통령, 길이길이 빛나리라 길이길이 빛나리라.

가난과 시련의 멍에를 벗고, 풍성한 결실과 힘찬 건설의,
민주와 부강의 푸른 터전을 이루려는 그 정성을 축복하소서.
아아아 대한 대한 우리 대통령, 길이길이 빛나리라 길이길이 빛나리라.
-「(박정희) 대통령 찬가」-

미당 서정주는 전두환을 칭송하는 시를 지었다.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쓴 전력이 있어서인지, 원래부터 활달한 그의 시적 기질  때문인지 그 내용과 스케일(?)이 어마무시하다.
(개인적으로 그의 시 역시 위 박목월과 같은 이유로 젊은 시절에 배척했고 나이 들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다시 그의 시를 읽게 되었다. )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또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구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흥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 서정주,「처음으로」-

*출처 : 딴지만평

가장 최근에 또 한 편의 '용비어천가'가 전해졌다.
가히 북한 지도부의 그것을 '압도'한다.

♪새로운 대한민국 위해서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대통령이 태어나신 뜻깊은 오늘을 우리 모두가 축하해♬

앞선 것들에 비해 가장 소박(?)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가장 유치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이런 짓거리가 권력의 심층부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무엇보다 저들은 저 노래인지 놀이인지를 하면서 정말 즐거웠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무사가 칼을 차고 지나가면 그 뒤엔 그를 칭송할 악사가 필요한 법이다. 칼이 허리에서 절그적거려서 무사는 자기 입으로는 자찬의 노래를 읊을 수가 없다. 악사는 바로 이런 때를 대비했다가 황홀한 음악을 탄금하는 것이 다. 이것이 바로 무사와 악사가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사이좋게 살아가는 우정이다.

- 홍성원의 소설, 『무사와 악사(武士와 樂士)』 중에서 -

'무사'에 기생하여 일신의 영달을 노리는 '악사'의 욕망과 '악사'의 추임새를 원하는 부정한 권력의 필요가 만나는 곳에 자찬의 잔치는 흥청망청이겠지만 그 뒤에 남는 것은 백성들의 고통뿐이지 않을까?
그리고 '악사'들이 '황홀한 음악'을 바쳤던 '무사'들의 최후가 어떠했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