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단상

그해 1월, 그리고 올 1월

장돌뱅이. 2025. 1. 27. 00:19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지도자로서 총체적으로 무능했다.
무모한 정책으로 경제를 악화시켰고 흉작까지 겹친 백성들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였다.
성직자와 귀족에게서 거두려던 세금이 반대에 부딪히자 이를 백성들에게로 돌렸으나 백성들은 '국민의회'를 결성하여 자신들이 국민의 98%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며 어떠한 세금도 자신들의 동의 없이 징수할 수 없다고 맞섰다. 루이 16세는 '국민의회'의 해산을 명령한 후 회의장을 폐쇄해 버렸다.

마침내 1789년 백성들이 바스티유를 공격하면서 혁명은 시작되었고 그는 백성들의 힘에 밀려 겉으로는 물러서는 척하면서도 권력 회복을 위해 발버둥쳤지만 끝내 실패하였다. 1791년에는 일가와 함께 국외로 도망하려고 하였으나 이마저도 실패하고, 1792년에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권력을 잃었다. 1792년 9월 21일 루이 16세는 공개 재판을 받아 반역죄가 선고되어  1793년 1월 단두대( guillotine)에서 처형되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나는 죄 없이 죽는다"였다고 한다.

아래 그림 속에서 사형집행인은 루이 16세의 잘린 머리를 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 옆에는 권력자의 동상이 사라지고 부서진 빈 받침대만 볼썽사납게 남아 있다.
약 200여 년 전 1월의 어느 날에 있었던, 생각해보면 그리 멀지 않은 날의  일이다.

Isidore Stanislas Helman ,<루이 16세의 처형>(1794)

'이 나라엔 법치주의가 무너졌다'고 '그 X'이 말했다. 
정작 망쳐놓은 건 자신이면서 짐짓 모르쇠로 '유체이탈'을 한 것이다.
적반하장, 후안무치에 지랄염병이다.
계엄령을 '계몽령'이라 하고, 의원을 '요원'이라고 한다.
날이 갈수록 온갖 궤변과 막말과 억지, 몰염치와 파렴치가 가히 '점입가경'이다.
끝내는 아수라장의 폭력까지 불러왔다.
언제 이 혼란이 정리되어 세상이 제모습을 찾을까?

알고 보니 '법치주의'란 말조차도 저들이 써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200여 년 전 1월의 그날부터 백성의 언어였다.

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誤用)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법치주의'라는 말이 큰 오해를 받고 있다. 법치주의는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은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어떤 주의(主義)도 필요하지 않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멋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원칙이다. 법치주의는 통치받는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한다. 권력자가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이 그에게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 그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행사를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법치주의에서 일탈하면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하며, 정당성이 없는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

-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