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단상

호수에 잠긴 달

장돌뱅이. 2025. 2. 6. 11:16
*출처 :최민의 시사만평 - 괴물이 된 그들

'그 X'이 뜻밖에 시적(?)인 표현을 썼다고 한다.
'호수 위에 떠있는  달그림자 운운.'
말은 발화(發話)의 장소와 환경, 그리고 발화자의 행동에 따라 뜻이 평가될 것이다.

무장한 군인과 장갑차와 헬기, 국회 유리창이 깨지던 밤에 그가 내뱉은 섬찟한 단어들을 떠올리면 '그 X'의 이번 시적 발언은 분노를 넘어 차라리 헛웃음까지 짓게 된다.
"국회는······입법독재······자유민주주의체제 전복······북한 공산 세력 위협······약탈······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패악질을 일삼는 망국의 원흉······준동······척결"

그는  다른 자리에서 자신이 벌인 123 난동에 대해"내란이 성립되려면 '폴리티컬 가브닝 플랜'이 있어야 하는데······ 어쩌고 저쩌고"했다고 한다. 
'폴리티컬 가브닝 플랜'?
Political Governing Plan을 말하려 했다면 발음도 어법도 어색한 '브로큰 잉글리시'다.
그냥 정치계획이라고 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긴
나중에 드러난 야구방망이, 송곳, 포승줄, 절단기와 무고한 사람들의 체포, 납치, 감금, '수거' 따위를 차마 '폴리티컬 가브닝 플랜'이라고 할 수는 없었겠지만.

권력자가 해석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불명확한 말이나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걸핏하면 내뱉는 것은 대개 뭔가를 감추려거나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라면 혹 그는 자신의 저렴한 영어 구사를 스스로는 멋이 있다고 착각하거나 액운을 쫓는 주술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30 세계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에게 119:29라는 기록적인 차이로 실패한 후 그가 한 말은 "부산 이즈 비기닝"이라는 '초현실주의' 영어였다.

무슨 대단한 하사품이라도 받은 양 위풍당당 내걸었던, 'The bucks stops here'(이런 말이 있다는 걸 나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라는, 명패 속 말도 이제 와서는 'The bucks stops there'라고 뒤집기라도 한 처럼 자신을 따랐던 부하들에게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하고 있다.

다시 '호수의 달그림자'로 돌아가면 '그 X'의 말은 내게는 두 가지 쪼잔한 피해를 입혔다.
한 가지는 앞으로는 달이 비친 물 위의 풍경을 그윽한 기분으로 바라볼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70년 대 '세부엉'이라는 트리오 가수가 불렀던 노래 <호수에 잠긴 달>을 예전처럼 눈을 감고 조용히 들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나랏일에서 개인의 감성에 이르기까지 '그 X'이 보여주고 저지른 '파렴치'와 '패악질'은 참 다양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