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돌뱅이. 2025. 2. 16. 10:22

2055년을 가상현실(VR)로 큰 손자저하와 체험했다.

행사장에 가기 전 손자저하가 선택한 식당에서 저하의 선택 메뉴로 밥을 먹었다.
"2055년? 그땐 우리가 100살이 다 되었을 텐데 살아있기나 하려나?" 
아내의 말에 저하가 말했다.
"왜요? 요즈음 의학이 발달해서 100살도 넘게 산데요."

제법 의젓해졌다는 생각도 잠시.
아내와 딸아이가 서로 식대를 계산한다고 설왕설래를 하다 딸아이가 나서자 저하가 말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엄마보다 일찍 죽을 것이니까 돈을 빨리 써버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하들은 가끔씩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어서 실소를 하게 만든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 둘이서 <<나 홀로 집에>> 영화를 보며 낄낄거린 적이 있다.
딸아이가 유치원때 비디오로 보던 영화를 대를 건너 OTT로 보게 되니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이다음에 우리 손자는 어른이 되면 저런 큰 집에서 살아라. 할아버지가 놀러 가게."
나의 말에 저하는 텔레비전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심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가 되면 할아버지는 죽어 있지 않을까요?"

"2055년"은 한 시간 정도의 체험이었는데 속도감 있는 배치와 내용으로 금방 지나갔다.
도시와 자연, 바다와 우주를 오고 가는 전개는 흥미로웠다. 특히 거대하게 폭발한 화산을 비행선을 타고 돌아보는 체험이나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거대 운석을 영화 <<아마겟돈>>에서처럼 파괴하지 않고 인공자기장을 이용해 경로를 변경시키는 임무에 손자는 몰입하는 듯했다.
물론 어른인 나도 재미있었다.

체험이 끝나고 감상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나는웃으며 말했다.
"재미있었지만 2055년까지 살아있지 않을 거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과학의 진보만으론 인류의 복지가 담보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 라는 기도 닮은 물음을 떠올려보기도 하면서.

리들리 스콧 감독이 1982년에 만든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미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그려진다.
화려한 야경의 LA, 숲을 이룬 마천루, 하늘은 날아다니는 자동차, 개발 중인 행성으로의 이주를 권하는 광고.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시대적 배경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9년이다.
1982년에 37년 뒤의 세상을 상상한 것이다.
영화처럼 현재 인간은 우주로 나가 살지 못하고 자동차를 타고 하늘을 날지 못한다. 인조인간도 없다. 하지만 우주여행이 곧 상업화된다고 하고, 드론이 하늘을 날며 복제동물들이 '탄생'하고 있다.

'제3의 물결'을 넘어 4차 산업혁명이라는 과학의 새로운 진보가 가져올 미래 세상엔 이전 3차 산업혁명까지 보다 더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일상생활의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  "초연결성, 초지능화(Hyper-intelligent), 사물인터넷(IoT : Internet of Things),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이 상호 연결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으로 보다 지능화된 사회로 변화될"(다음백과) 미래 사회의 도래를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기술 개발에 따른 변화와 통제의 주체가 몇몇 거대 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현실에서 보통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의 다양성이나 총체성은 위태로워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조지 오웰의 『1984년』처럼 암울하지는 않더라도 '빅브라더' 앞에서 사람들의 삶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삶의 다양성이란 대량생산된 여러가지의 청바지 중에 내 마음에 드는 모델을 집어드는 것과는 다른 것이지 않는가? 누구나 느낄 수 있거니와 일이십 년 전보다 확실히 우리의 일상은 대기업의 '상품'에 종속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골목상권의 몰락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개미』로 유명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상표 전쟁」이라는 단편 소설을 통해서 국가보다 기업의 영향력이 비대해진, '있을 법한' 미래 사회를 그렸다. 막강한 자본의 초국적 기업들이 학교, 병원, 군대, 도시를 소유하고 나아가 우주 개발에까지 나서게 된다. 사람들은 프랑스인, 미국인, 영국인 대신에 프랑스 르노인, 미국 애플인, 일본 소니인이라 사용하다간, 나중엔 소속 국가를 생략하고 그냥 마이크로소프트인, 디즈니인 등이란 신조어를 사용하게 된다.
한국엔 삼성시티라는 사설 잠수함 부대까지 갖춘 항구 도시가 생겨난다.

- 지난 글 「추석에 본 영화 <<마션 MARTIAN>>」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