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과 4월에 베트남의 하노이와 냐짱(Nha Trang)을 다녀왔다. 언젠가부터 나의 여행은 시나브로 걸어 다니는 여행이 되었다. 목적지를 정하고 걷는다기보다 걷다보면 누군가나 어딘가를 만나는 것에 가깝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다리가 아프면 카페에 들어가 쉰다. 날이 궂으면 쇼핑몰이라도 걷는다.
동남아에선 수영장 놀이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1월의 하노이는 추워서 수영에 적절치 않다. 실내수영장은 목욕탕 느낌이라 내키지 않는다. 냐짱에선 가고오는 날을 빼곤 비가 와서 수영장 가에 늘어져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여행은 저절로 다른 할 일을 마련해 주었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몸무게를 줄이는 다이어트를 한다. 어떤 이는 일상에서도 불필요한 것들을 털어내는 '미니멀리즘'을 주장한다. 더해야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빼냄으로써 삶이 완벽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행도 그렇지 않을까? 주어진 시간 내에 가능한 이름난 곳을 많이 보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효율도 의미 있지만 수영장에 누워 하늘을 보거나 걸어 다니다 만나는 우연한 것들을 즐기는 비효율적 '다이어트'도 필요하지 않을까? 단순하되 그 단순함에 충실한, 그래서 행복해지는······.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씩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 저녁이 되면 바다는 한숨을 쉬며 장미빛이 되었다가 자줏빛, 포도주빛, 그리고는 짙푸른 색깔로 변하는 것이었다. 오후면 나는 알이 고운 모래를 한 줌 쥐었다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을 즐겼다. 손은, 우리의 인생이 새어나가다 이윽고 사라지고 마는 모래시계였다. 손 그 자체도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