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중국

타이베이 여행 3

장돌뱅이. 2025. 5. 28. 11:21

화산1914(華山)는 원래 1914년에 지어진 술 만드는 공장이었다.
1987년 공장이 이전하며 방치되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2007년에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한다. 카페, 식당, 영화관, 공연장 등이 있지만 우리는 아침 시간에 산책을 하러 갔기 때문에 대부분이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서울 성수동의 공장을 개조한 카페에서 그렇듯 오래된 건물들에서 풍기는 레트로 감성의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큰 규모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물을 둘러보는 일은 여행과 비슷하다.
예전에는 전시물도 세상도 가능한 많이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세상엔 보야할 것이 너무 많고 아무리 열심히 돌아다녀도 그런 것을 다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많이 보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더 오래 보고자 했다.

국립고궁박물원(國立故宮博物院)은 약 70만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장개석이 중국에서 타이완으로 넘어올 때 중국 자금성의 고궁 박물원에 있던 유물을 가지고 온 것들이다. '고궁'을 한자로 '古宮'이 아니라 자금성을 뜻하는 '故宮'을 쓰는 이유다.
유물이 너무 많아서 주요 작품들은 몇 개월 단위로 교체 전시를 할 정도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내와 나는 서예와 도자기 부분만 돌아보기로 했다.
그것마저도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할 만큼 많아서 결국 주마간산의 감상이 되고 말았다.
물론 서예 작품도 글의 뜻을 헤아릴 한자 실력이 안 되니 글자 구경을 하는 수준이었다.
"잘 보고 앞으로는 이렇게 써보도록 해."
서예를 배우는 아내를 놀렸더니 즉각 대답이 돌아왔다.
"당신은 딘타이펑 음식을 먹어보기까지 했으니 만들어 줘."
아내의 말발은 늘 나를 압도한다.

전시물 중에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취옥백채 (翠玉白菜) " 같았다.
취옥백채는 푸르스름한 비취에 배추와 곤충(여치?)을 정교하게 조각한 것이다.
배추와 곤충은 원나라에서 명나라 초기까지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소재를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로 희고 투명하며 푸른 배추는 순결과 청렴, 곤충은 다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취옥백채(翠玉白菜)

도자기는 실용과 예술의 조합이다. 만든 사람과 사용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그것에 머문 긴 세월이 느껴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지선원(至善園)은 고궁박물원 아래쪽에 중국 전통 형식을 따라 1948년에 만든 정원이다.
숲과 연못이 있다. 번잡한 고궁박물원을 나온 뒤에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한적함이 더욱 깊게 느껴졌다. 긴 회랑이 있어 버스정거장까지 내려올 때 비를 피해 가며 구경을 하기에 좋았다.

옛 예술을 보았으니 현대미술도 보러 갔다.
타이베이당대예술관(台北當代藝術館, MOCA Taipei)은 이름 그대로 현대 예술 작품을 전시한다.

아내와 내가 갔을 때는 "환세계일지(環世界日誌)"과 "안전실(安全室)"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현대' 미술이 그렇듯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었다.
설치 미술과 영상이 전시되고 있었다.  끝없이 바람도 불고 하늘의 해도 움직이는데 서있는 사람들만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영상도 그 의미를 온전히 해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낯선 풍경의 길을 산책한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돌았다.
그래도
 100년 전에 지어졌다는 예술관 건물 내외관을 보는 것만으로 크게 아쉽진 않았다.

*독특한 모양의 입장 티켓

여행은 반드시 해야 할 의무나 목적이 아니다.
의미와 깨달음을 찾아 떠도는 구도의 행위도 아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을 모두 이해하려고 애를 쓸 필요없이 그냥 보고 듣고 자유로이 다니는 것이다.
그저 아내와 그 모든 걸 나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