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희빈장씨, 장옥정)만큼 우리나라 사극에 많이 오른 인물도 드물 것이다. 요즈음(2010년) 인기 드라마 <<동이>>에서도 그녀는 극의 한 축을 지탱하는 비중 있는 인물이다.
*위 사진 : 연속극 "동이" 속의 장희빈(MBC)
역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나인으로 궁에 들어간 장 씨는 숙종의 총애를 받아 후궁을 거쳐 인현왕후를 밀어내고 마침내 국모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폐위가 되고 사약까지 받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일생을 살다 간 여인이다. 극 중의 그녀는 늘 교활한 악녀의 전형으로 그려지지만, 극심했던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런 그녀 또한 희생자 아니었을까? 문서가 전하는 기록은 종종 ‘승자의 기록’이기도 하니까.
*위 사진 : 희빈 장씨의 묘
그녀의 무덤이 서오릉에 있다. 홍살문도 참도도 정자각도 없이 길 옆에 바투 붙어 있는 무덤 앞에는 몇 개의 석조물만 있을 뿐이다. 다섯 기의 왕릉과 왕의 친척들의 산소인 두 곳의 원(園所)과 함께 있어 그 초라함이 두드러져 보인다.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으나 1969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녀에게 권력과 영화, 그리고 이혼(폐비)과 죽음이라는 극단을 안긴 남편 숙종과 그의 다른 부인들의 묘가 또한 가까이 있다. 그녀는 무덤 속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위 사진 : 숙종과 두 명의 계비가 묻힌 명릉
조선 19대 왕인 숙종(肅宗)은 첫 번째 계비(繼妃) 인현왕후(仁顯王后)와 두 번째 계비 인원왕후(仁元王后)와 함께 서오릉의 맨 동쪽 명릉(明陵)에 묻혀 있다. 장희빈의 '간계'로 폐비가 되었다가 다시 복위된 인현왕후는 그 보상인지 숙종과 한 울타리 안 가장 가까이 묻혀 있다.
*위 사진 : 인원왕후 무덤 앞쪽으로 숙종과 인현왕후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
그 뒤를 이은 인원왕후의 묘는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홀로 있어 조금은 애처로워 보인다. 그래도 정비(正妃)인 인경왕후(仁敬王后) 보다는 나아 보인다. 인경왕후의 무덤인 익릉(翼陵)은 숙종의 묘가 보이지도 않는 서오릉의 중간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인경왕후는 숙종 6년(1680)에 2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숙종은 왜 죽은 뒤에도 조강지처와 나란히 하지 않은 것일까?
*위 사진 :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의 무덤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관계는 끝내지 못한다는 말은 무덤 앞에 서면 절실해진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도 그렇고 죽은 자들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무릇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사랑하며 살아갈 일이다. 죽은 뒤에는 그 관계가 살아온 형태대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가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도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