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캄보디아 여행기 4. - "마지막 낙원" 프놈펜
여행안내서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에는 프놈펜의 하이라이트를 다음과 같이 꼽았다.
1). 왕궁 내의 실버파고다
2). 왓프놈
3). 뚜얼슬랭 감옥
4). 국립박물관
5). 프놈펜의 나이트라이프
론리플래닛의 안내가 없었다 해도 프놈펜에 온 이방인 여행자가 선택할 곳은 대충 그런 곳이었다.
내가 프놈펜에서 돌아본 곳도 대충 비슷했다.
왓프놈은 내가 묵은 호텔 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도착 뒷날 아침 일찍 일어나 프놈사원에 올라 이번 여행에 행운이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보았다. 메콩 강물이 범람하여 떠내려온 불상을 뺀이라는 여인이
건져내 언덕 위에 모시고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작은 동산이지만 평지의 프놈펜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며 수도 이름 프놈펜도 이
사원의 이름과 전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기구한 사연으로 치장하지 않은 전설이 캄보디아인의 마음인 양 담백하다.
아마 무척 평화롭던 시절에 절이 지어졌던가 보다.
프놈사원뿐만이 아니라 프놈펜과 캄보디아도 그 옛날엔 평화롭고 종교적인 경건함이
깃든 아름다운 땅이었음에 틀림없을 것 같았다.
화려한 색상과 장식의 왕궁과 5천여 개의 은으로 만든 타일이 바닥에 깔렸었다는
실버파고다도 그것이 비록 태국의 왕궁과 사원에서 눈에 익은 것이었다고 해도
아름다운 볼거리였고 국립박물관은 아담한 규모였지만 섬세한 조각품들로
아기자기한 옛 크메르의 영광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똔레삽 강변의 풍경은 여행자에게 세상의 모든 강변처럼 평화롭게 다가왔다.
누런 황토빛 강변에서 목욕을 하는 여인들이 한가로워 보였다.
강변을 따라 이어진 씨소와쓰 SISOWATH 거리에서 손님을 찾아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
씨클로와 모또는 무질서해 보이는 듯했지만 폭염으로 지친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찐 고구마 몇 개를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는 앳된 아가씨들의 얼굴엔 수줍음이 빨갛게
묻어났고 그 모습은 길거리 식당의 작은 TV 앞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앉아 구경하는
모습과 함께 그대로 우리의 60-70년대 모습이어서 정감이 갔다.
그러나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만으로 자기만족적인 낭만에 빠져들기에 프놈펜은
너무 궁핍한 곳이었다. 사람들의 가난은 비참하고 절박한 것이었다.
식료품에서 전자제품까지 없는 것이 없는 시장센트럴 마켓에서 1불 50센트를 주고 산
해적판 책 속엔 불과 3-4년 전의 프놈펜의 모습이 충격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PHNOM PENH IS AN ANARCHIC FESTIVAL OF CHEAP PROSTITUTES,
CHEAP DRUGS, AND FREQUENT VIOLENCE.......<중략>......IT IS A CITY
WHERE THE IMMORAL BECOMES ACCEPTABLE AND THE INSANE BECOMES
NORMAL.......<중략>......CAMBODIA CONTINUALLY CHALLENGED MY CONCEPTION
OF WHAT IS REAL AND WHAT IS IMPOSSIBLE. I DISCOVERED AN ENTIRE STREET
DEVOTED TO WOODEN SHACK BROTHELS, WHERE THE GIRLS ARE AVAILABLE
FOR $2, AND RESTAURANTS WHERE MARIJUANA IS THE FLAVORED TOPPING FOR
THE PIZZAS. I HEARD TALES OF POLITICAL INTRIGUE, VIOLENCE, AND
CORRUPTION."
-"OFF THE RAILS IN PHNOM PENH" 중에서-
값싼 매춘과 마약, 빈번한 폭력으로 뒤섞인 광란의 도시.
비도덕적인 것이 용인되고 비상식적인 것들이 정상적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도시.
실재하는 것과 불가능한 것의 개념이 늘 혼돈스러운 도시.
거리에 늘어선 목재로 지은 조악한 매춘업소에서 2불이면 여자를 구할 수 있는 도시.
피자 위에 마리화나가 토핑 되어 나오는 식당이 있는 도시.
정치적인 음모와 폭력과 부패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도시...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든지 위의 문제가 있겠지만 프놈펜은 그들 도시의 모든 불합리를
합친 것보다 더한 부조리의 도시라는 것이다. 그 책을 쓴 작가는 96년에서 98년 사이의
자신의 경험과 인터뷰를 토대로 글을 쓴 것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1997년 4월까지 캄보디아에서는 마리화나의 거래가 위법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피자에 마리화나가 얹어 나오는 식당이 외국인들이 즐겨가는 씨소와쓰의 거리에
즐비했었다고.
‘보통으로 행복한(MILDLY HAPPY) 피자'와 ‘곱빼기로 행복한(EXTRA HAPPY) 피자’가
있었다고 하던가? 물론 토핑 되는 마리화나의 양에 다른 분류일 것이다.
거리 곳곳, 특히 프놈펜 북쪽의 호수 주변에는 매춘업소가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12-13세의 어린 소녀들까지 내세운 특별코너(이름하여 ‘KIDDIE CORNER')까지
있었다고 한다.
“터무니없이 값싼 마약과 방콕을 능가하는 섹스 짜릿한 흥분의 도시로 프놈펜은
입에서 입으로 그 체험담이 전해지면서 전 세계에서 수많은 서양인들을 끌어들였다.
그들 중 상당수는 아예 프놈펜에 눌러앉아 장기 체류자가 되었다. 그들에게 프놈펜은
마지막 낙원이었다.”
-유재현의 ‘인도차이나 여행기’ 중에서-
유재현의 글에 따르면 프놈펜이 이런 낙원(?)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991년의
파리평화협정이었다. 캄보디아의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유엔은 운탁(UNTAC,
유엔캄보디아과도행정부)를 만들어 캄보디아로 보냈다.
그러나 일본인 아스키를 수반으로 하는 운탁은 무려 1993년까지 3억 불에 달하는 유엔
역사상 최고액의 예산을 낭비하며 캄보디아에 평화를 심는 대신 매춘과 에이즈를
창궐시켰다. 오죽했으면 매음굴 앞에 유엔 차량을 주차시키지 말라고 상층부가
지시 메모를 내렸을까.
거기에 오랜 내전은 무기의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몇 년까지 프놈펜 시내에서
각종 총기로 실탄 사격을 해볼 수 있는 오락장(?)이 공공연하게 성업 중이었다고 한다.
더불어 총기를 사용한 범죄가 없을 리 없었겠다.
오늘날 프놈펜의 많은 문제는 19세기말 원료 획득을 위한 서양제국주의의 동진정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거기에 ‘인도차이나 평화’를 위하여 강대국들의 몇 차례에
걸친 회의가 만들어 낸 결과이기도 하다.
아비규환의 지옥을 만들어 놓고 ‘마지막 낙원’이라니!
다행히 2003년의 프놈펜엔 그런 많은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것’들이 적어도
거리의 전면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훈센 정부가 민간인의 무기 소지를 불법으로
하여 무기 회수 정책을 시행하면서 길거리의 무기들이 사라졌고 ‘행복한 피자’도
구경할 수 없었다. “뷰티플 걸?” 하며 접근하는 모또 운전수의 제의는 받아봤지만
직접 눈으로 그런 매춘 업소를 보지는 못했다. 아마 프놈펜에 머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캄보디아 사회가 그나마라도 조금씩은 안정을
찾아가는 증거로 봐도 되겠다.
실제로 프놈펜의 거리는 혼자 돌아다녀도 안전해 보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곳곳에 경찰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눈에 띄었다.
공항 택시 운전수가 미국의 콜린 파월이 올 예정이라 그렇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 호텔에서 물어보니 ARF 외무장관 회담 및 아세안 지역 안보 포럼이 열린다고
했다. 파월은 이튿날 도착하게 되어 있으나 그가 묵을 예정인 LE ROYAL 호텔은
운행 허가증을 부착하지 않은 차량은 아예 들어갈 수가 없도록 길을 막아 버렸다.
내가 예약되어 있는 LE ROYAL호텔 옆의 SUNWAY 호텔도 회의 참가 귀빈이 묵는
관계로 검문검색이 강화되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논의하는 회의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이 참석하는 안보 관련회의라는 점에서, 그것도 장소가 인도차이나라는 점에서
조금 냉소적이 된다. 무엇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하거나 도모한다는 말일까?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의 여행자조차도 프놈펜에서는 쉽게 정치적이 된다.
아니 정치적이 되어야 오늘날의 프놈펜을, 캄보디아를, 인도차이나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