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단상
짜장면은 언제나 옳다
장돌뱅이.
2024. 3. 25. 23:23
내가 짜장면을 처음 먹어 본 것은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친척 형과 함께 서커스 구경을 한 날이었다. 내가 살던 마을은 행정구역으로는 서울이었지만 변두리 촌이어서 짜장면은 청량리쯤의 시내나 나가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처음 맛본 짜장면은 가히 천상의 맛이었다.
"그 충격적인 첫맛의 기억은 성인이 되면서 점차 희미해지고 소멸되어 차차 여느 보통의 음식과 같이 되었다. 그런데 그 짜장면의 맛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짜장면의 냄새가 성인이 된 내게 강렬하게 부활한 적이 있다. 군에 입대해서 논산훈련소에서 박박 기며 신병 훈련을 받을 때였다.
각개전투 교장에서 돌아오던 저녁 무렵 훈련소 주변에는 늘 짜장 볶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악을 쓰듯 군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우리들의 눈에 어디에도 중국집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냄새만은 환장할 정도로 코끝을 자극하며 바람을 타고 밀려왔다. 저쪽 골목 안에 중국집이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모두가 영장 받고 ‘끌려온’ 처지에 낯선 골목 안 지리까지 제대로 알 리가 없다는 점에서 신빙성을 의심할만한 소문이었다.
설사 그곳에 그 '우라질 놈의 짱깨집’이 있다고 해도 왜 저녁 무렵에만 그리 짜장을 볶아대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실재하지 않는 냄새이거나 다른 음식을 만드는 냄새였는지도 모르겠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장정들에게, 그것도 체력 소모가 심한 훈련을 마친 훈련병들에게, 점심시간에 먹은 짬밥 한 그릇은 너무 빈약한 것이어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선 어떤 환각이라도 빌려와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훈련병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그 냄새를 짜장 냄새로 규정했고 나중에 휴가를 나가면 반드시 짜장면을 곱빼기로 먹겠다는 야무진(?)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본래 영어공부나 금주금연, 독서 같은 삶에 유용한 일이 아닌 쓸데없는 일에 불굴의 정신력을 보이는 편인 나는 몇 개월 후 자대배치를 받고 면회를 온 어머니와 애인에게 다른 음식을 제쳐두고 짜장면을 고집하는 것으로 그 결심을 실천에 옮기고야 만다." (앞선 글「냄새에 관한 몇가지 기억」중에서 따옴표 부분 가져옴)
냄새에 관한 몇가지 기억
빵냄새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서울. 하지만 변두리였고 5-60년대 초반까지는 지방의 여느 농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동 목욕탕이 없어서 목욕을 하려면 버스를 타고 청량리까지 나가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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