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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한심한 시절의 독서

by 장돌뱅이. 2024. 5. 16.

수상하고 한심한 시절이다.
나로서는 골방에서 책을 읽거나 읽은 책의 기억을 되살리며 지낼 뿐이다.
백면서생이자 백수인 내게 현실의 한심함이 그리 특별하거나 '창의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아마 지난 역사책에서 보았던 기시(旣視)감 때문일 것이다.

청일전쟁 무렵 일인들의 조선 진출이 활발해졌다. 그들은 토지와 가옥을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시에 일인들의 토지 매수 대금은 대부분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지출되었다고 한다.
개항장 10리 이내를 넘어 그 바깥 지역까지도 조선인 앞잡이를 내세워 본격적으로 사들였다.

송정섭(宋廷燮)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조선정부로부터 월미도 개발권을 따낸 후 일본인 요시까와(吉川佐太郞)에게 그 권리를 팔아버렸다. 요시까와는 월미도 주민들을 강제로 축출했고 그 자리에 일본은 포대(砲臺)를 세워 1904년에는 일대를 요새화 했다. 조선 정부는 송정섭에게서 매각 대금을 회수, 일본에게 권리 반환을 요청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였다.

송정섭은 월미도를 팔아 1만6천원이란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고 한다.
이 시절에 그의 아바타가 다시 어른거리는 것 같다. 왜일까?
'라인 사태'로는 누가 어떤 이익을 어떻게 보는 걸까?
조선정부는 일본에게 반환을 요청(항의?)이라도 했다는데······.

'The BUCK STOPS here!'
이 생뚱맞은 말이 생뚱맞은 장소에 등장해서 황당했다.
나는 미국에서 7년을 살았지만 워낙에 영어 밑천이 얄팍하기도 해서 그 뜻을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해봐야 했다.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B'대신 'F' 자판을 누르기도했다.
누구의 말이건 누가 주었건 내겐 노름판이나 술집 벽에 붙어 있으면 어울릴 것 같은 말 판때기를 저 자리에 놓아야 '가오'가 선다고 생각했을 그 감각이 참 '유치찬란'해 보였다.

백성들 위에 올라앉은 사람들(은) (···) 언제나 백성들을 어리석다고 가르치고 부리려 했고, 통제하고 다스리고 훈련해야 하는 무리로만 알았다. 그러니까 우리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낸 다음에도 그 글자를 온 백성들이 모두 쉽게 배워서 마음대로 쓰게 되면 자기들의 자리가 흔들리고 특권을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나서 한사코 우리 한글을 못쓰도록 막았던 것이지. 산과 들에서 곡식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외국글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나는 어려운 말을 지껄이고 어려운 외국말법으로 글을 쓰는 지식인들의 사상이고 철학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몸으로 행동할 줄 모르고 말만 요란하다. 어렸을 때부터 잘못된 말로 된 글만 읽고 책 속에 빠져서 그 머릿속에는 온갖 쓸모없는 잡동사니 지식으로 차있고, 뿌리 없는 철학과 사상이 책에서 익힌 남의 나라 말과 말법으로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또는 하늘 위에 떠 있는 신기루처럼 들어앉아 있다. 국회고 행정부고 학교고 어디고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망쳐놓은 것도 사실이다. 어째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나. 국회의원이고 장관이 될 수 없나. 어째서 말만 앞세우고 수단방법 안 가리고 입신출세를 하려고 하는 재주꾼들만 설치는 사회가 되었나. 어째서 속은 비어 있으면서 겉만 꾸며 보이려고 하는 풍조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나.

- 이오덕, 『우리글 바로쓰기 4』 중에서 -

*출저 : 야후재팬(주기자라이브에서 재인용)

송병준(宋秉畯)은 을사늑약 2년 후인 1907년에 체결된 '정미7조약'에 찬성한 7명의 반민족행위자, 곧 정미칠적(丁未七賊) 중의 한 명이다.
1913년 1월 21일 자 『매일신보』는 송병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일한(日韓)의 친선을 증대하기로 다하고 공사 간에 공적이 심대할 뿐 아니라 밤낮으로 조선으로 하여금 문명국과 비견하기를 도모하고 신변의 의식주까지 모두 일본풍을 모방하여 조금도 일본인과 다름이 없다. (···) 큰 일에 임해 대책을 결정할 때는 의리가 삼엄하여 간사한 무리들이 충심으로 두려워하고 나쁜 무리들이 혼을 빼고 놀라니 실로 조선 일류의 인걸이라 칭하겠더라." 

'일본에 있어서는 참으로 믿음직한 말'이라는 최근의 일본 기사와 '조선 일류의 인걸'이라는 백 년 넘은 기사는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닮았는가
······.

*출처 : o_deng96

해방 이후 일본인들의 망언은 아마 책으로 써도 될 만큼 많았다.
이에 대해 학창 시절 읽은 이영희선생님의 글이 여전히 유효해 보이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일본인의 망언에 대해서는 마땅히 비판하고 항의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대사의 "반성한다"는 해명을 듣고 이것으로 '완전히 일단락되었다'고 믿고 주저앉은 사람들의 의식도 문제된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속에서 일본인의 망언이 딛고 서있는 우리 자신의 내적(內的) 근거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그것에 대한 민족적 자세를 분명히 할 때에 우리와 우리의 후세대는 일본인의 우월감과 망언의 대상에서 해방될 것으로 생각한다. 식민지 통치에 관한 일본인의 우월감과 망언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일본의 정신적 식민지인 것이다.
우리가 형태를 달리한 식민지 아닌 식민지에서 진정 해방되는 길은 식민주의자가 우리를 부정했던 그 부정을 우리의 의지로 부정하는 곳에 열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이영희, 『우상과 이성』 중에서 -

다시 읽어보니 그때는 망언을 반복해서 그렇지 그래도 일본인 대사가 '사과한다'는 '립서비스'라도 했던 모양이다. 망언을 있게 한 우리의 '내적 근거' 그리고 '우리를 부정했던 부정에 대한 부정'을 다시 생각해 본다.

이번 달 하순에는 일본 총리라는 작자가 서울을 다녀갈 모양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 또 뭐가 남을지 걱정부터 앞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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