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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3

하필 부처님 오신 날에 그럭저럭 사는 거지.저 절벽 돌부처가망치 소리를 다 쟁여두었다면어찌 요리 곱게 웃을 수 있겠어.그냥저냥 살다보면 저렇게머리에 진달래꽃도 피겠지.- 이정록, 「진달래꽃」-부처님 오신 날 아침.시를 읽으며 '그래 모나지 말고 좀 너그럽게 살자' 혼자 다짐해 보았다.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길래 아침 산책을 했다.햇빛이 하도 맑아 걷다가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푸른 나뭇잎 사이로 맑은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사이 어느새 구름이 하늘을 채웠다.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날씨와 달리 부부싸움은 예보가 없이 불시에 들이닥친다.발단은 언제나 사소하지만 순식간에 열대폭풍우로 발달한다.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말이 어깃장 나가기도 한다.오늘도 그랬.. 2024. 5. 15.
메리 크리스마스 할아버지가 온다는 사실을 알면 2호 저하는 오는 길목을 내다보며 망부석이 된다고 한다. 딸아이가 보내준 사진을 보면 매번 마음이 조급해져 발길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두 저하는 나이 차이가 있어 공통의 놀이를 가지고 함께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정해 공평하게 교대로 노는데 이것도 어렵다. 누구하고 놀아도 다른 한 저하의 아쉬움과 불만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긴 하다. 딸아이는 옛날부터 '인생은 이벤트'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나는 딸아이의 말에 동의한다. 흔히 말하 듯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느라 피곤할 텐데도 딸아이는 의욕적으로 무슨 일인가를 자주 벌인다. 크리스마스가 .. 2023. 12. 26.
꽃길만 걸읍시다 "갑자기 먹고 싶은 게 생각났어." 텔레비전에서 타이베이 여행기를 보다가 아내가 말했다. 타이난 (臺南)지역의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올 때였던 것 같다. "어떤 거?" "오징어볶음과 파스타, 그리고 딤섬" 딤섬은 사먹어야 하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음식이라 망설일 필요가 없다. "오케이! 장을 봐다 바로 만들어 줄게." 막연한 '맛있는 거'보다 구체적인 목표 메뉴가 있는 것이 음식을 준비하는 쪽에서는 훨씬 편하다. (부엌을 접수하기 전 나는 '맛있는 거 좀 해줘'라고 막연한 요구를 자주 던져 아내를 괴롭힌 바 있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대개 '아무거나' 먹는다. 냉장고를 뒤져 짜투리 음식들을 모아 비벼 먹으며 재고정리를 하거나 라면 따위의 즉석식품으로 때운다. 어떤 음식이 '먹고 .. 2023.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