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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2

발밤발밤2 - 구례, 늦가을1 목적지와 상관없이 기차여행은 내게 여행의 원형 같은 것이다. 어린 시절 버스나 전차를 타고 청량리나 동대문 쯤의 시내를 나가는 것이 특별한 나들이였다면 고속버스라는 것이 등장하기 전까지 기차는 그보다 먼, 잠을 자고 와야 하는 장거리 여행을 의미했다. 물론 그 시절엔 순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집안의 대소사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어른들을 따라가는 정도였지만. 기차에 올라 출발를 기다릴 때의 조바심에서부터 덜컹이며 다리를 건너거나 깜깜한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의 흥분은 지금의 그 어떤 놀이기구에서도 느낄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아내가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을 제안했다. 국내여행도 오래간만이지만 기차여행은 더 오래간만이었다. 부산이나 대구를 꼽아보다가 전라남도 구례를 택했다. 지리산과 섬진강 .. 2014. 12. 27.
절 이야기1 - 화엄사와 화암사 *위 사진 출처: 화엄사 홈페이지 아내와 함께 자주 절을 찾아 여행을 떠나곤 했다. 진리와 하나된 마음으로 일주문을 지난 적도 없고 세심교를 지나며 세속의 욕망을 씻어거나 털어내 본 적도, 오체투지로 부처님 앞에서 스스로를 최대한 낮추어 본 적도 없으면서 그냥 사찰 금당(金堂)의 부처님을 향해 오르는 길을 자주 걸었다. 연록 새싹이 귀여운 새의 부리처럼 쫑긋거리며 돋아나는 이른 봄과 소리 높여 계곡을 지나는 맑은 물에 짙은 녹음이 흔들리는 여름, 아득한 하늘 아래 투명한 햇살이 가득한 쏟아져 내리던 가을과 청정한 기운의 맨 몸으로 꼿꼿이 서있는 나무숲의 겨울 - 길을 오를 때마다 계절이 그냥 왔다가 저절로 가는 것이 아니 듯이 우리도 우연히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는 어려운 가르침을 가볍게 떠올려 보기도 .. 2013.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