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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책 『외로움의 습격』

by 장돌뱅이. 2024. 5. 8.

한나 아렌트(Hannah Arent)는 이렇게 말했다. "외로움이 이토록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이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 영어권에서는 16세기까지 외롭다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달리 말해 외로움이란 그 이전까지는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거나 혹은 표현할 필요가 없던 것으로, 그 이후 사회적 변화와 함께 찾아온 새로운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외로움의 습격』(김만권 지음)은 외로움에 대한 정의, 외로움이란 개념의 등장 배경과 그 철학적, 사회적, 정치적 의미에 대한 탐색이다. 특히 디지털 세대가 어떻게 노동을 과소 평가하고, 어떻게 분배의 격차와 외로움과 편견을 가속시키는가를, 기기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평이한 말로 설명한다.

외로움은 "이 세상에서 타자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갈 터전을 잃은 느낌, 그래서 결국에 이 세상에 속할 곳이 없다"는 고립된 감정이다. 외로움은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정체성은 타자를 통해서만 확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외로움이 개인을 넘어 집단적인 문제로 등장한 것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반 사이"다.
'실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기와 같다. 18세기부터 20세가 초에 이르기까지 150년 동안 유럽에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자리는 인구증가율을 따라갈 수 없어 19세기 중후반부터  대규모의 실업이 발생하였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실업은 인간의 가치를 상실한다는 의미와 동일했다.
이 '뿌리뽑힘'과 '쓸모없음'의  감정에서 외로움이 비롯되었다.


최근에 디지털 기술은 일상생활의 속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어느 때보다 좁혀놓은 듯하지만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외롭게 만드는 기술이 되었다. '연결'이 사회적 '결속'을 강화시킬 수 없었던 까닭은 '디저털 기술이 "(중간 숙련) 노동자의 업무를 자동화 했고, 자본에 비해 노동에 불리하게, 그리고 대졸이나 대학원졸 노동자에 비해 저학력 노동자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소수의 전문적인 능력을 지닌 집단과 그렇지 못한 다수의 집단으로 노동의 지형이 갈라졌고 경제적 이득을 극단적으로 분배하는 양극화를 낳았다.  거기에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의 '능력주의'는 경쟁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게으름'이나 '비윤리적'이라는 굴레를 씌워 외로움은 증폭되었다. 우리나라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26%로 OECD국가 41개국 중 가장 높다. 특히 젊을수록, 혼자 살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외로움은 더욱 커진다고 책은 말한다.

외로움은 개인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시작되었다.
그 해결책 역시 사회적이어야 한다. 책은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사회적 가치 자원의 대응책으로서, 능력주의의 핵심인 '강박적 자기 책임의 윤리에서 벗어나자!'  (자기 책임의 윤리에 빠진 사회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타자를 돕는 일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둘째, 개인들이 자기 책임의 윤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록 '경청을 제도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하자!'  (외로움의 본질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할 수 없는 것이라 할 때, '경청'이야말로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주요한 사회 문화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셋째, 외로움이 불평등한 사회에서 더 쉽게 확산된다는 점을 고려해 '정치공동체가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분배 제도를 개선하자!'  (이를 위해 저자는 기초자산에 바탕을 둔 '생애 주기 자본금'과 기본소득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인생 위기 ·전환 대음 자금' 같은 경제적 지원책을 제도화하자고 했다.)

넷째,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디지털 시민권을 마련하자!  (이를 통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능력이 없거나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 역시 보호하자.)

언제간부터 '각자도생'이 우리 사회의 생존전략이자 전술이 된 것 같다. 점점 그악스러워지는 세상을 지켜보며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서있어야 하는 상황이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은 두렵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던가.
주위의 고통에 눈을 주고 귀를 기울이고 손을 내미는 미덕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상독서토론 모임 "동네북" 4월 도서(파란색 부분은 책에서 인용)

*참고
외로움과 고독은 구분되어야 한다. 
"외로움이 차가운 침묵이라면 고독은 자신을 향해 열린 긍정적 감정이며 따뜻한 대화"이다.
외로움은 "자아 상실의 문제이며 고독은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상태이다.
외로움은 혼자 있어서가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고독을 찬양했다.
"위대한 일은 모두 시장과 명성을 떠난 곳에서 일어난다. 옛날부터 새로운 가치의 창안자들은 시장과 명성을 떠난 곳에서 살아왔다. 달아나라, 벗이여, 그대의 고독 속으로."

헨리 데이비스 소로우(Henry D. Thoreau)도 그의 저서 『월든』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대개 방 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 있든지 항상 혼자이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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