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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6

한심한 시절의 독서 수상하고 한심한 시절이다. 나로서는 골방에서 책을 읽거나 읽은 책의 기억을 되살리며 지낼 뿐이다. 백면서생이자 백수인 내게 현실의 한심함이 그리 특별하거나 '창의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아마 지난 역사책에서 보았던 기시(旣視)감 때문일 것이다.청일전쟁 무렵 일인들의 조선 진출이 활발해졌다. 그들은 토지와 가옥을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시에 일인들의 토지 매수 대금은 대부분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지출되었다고 한다.개항장 10리 이내를 넘어 그 바깥 지역까지도 조선인 앞잡이를 내세워 본격적으로 사들였다.송정섭(宋廷燮)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조선정부로부터 월미도 개발권을 따낸 후 일본인 요시까와(吉川佐太郞)에게 그 권리를 팔아버렸다. 요시까와는 월미도 주민들을 강제로 축출했고 그 자리에 일본은 .. 2024. 5. 16.
한글날 그저께는 엄마와 함께 그릇 사러 시장에 갔는데 그릇 판다는 가게는 없고 주방용품 판다는 가게만 보여서 못 사고 그냥 왔다 어제는 내 옷 사러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갔는데 어린이 옷 판다는 곳은 없고 아동복 판다는 곳만 있어서 못 사고 그냥 왔다 요새는 그릇 사려면 주방용품점에 가야 하고 어린이 옷은 아동복점에 가야 한다는 걸 엄마도 나도 깜빡했다 멍청하게도! 그래서 그만 그렇게 되었다 엄마와 난 이렇게 멍청하다 - 권오삼, 「멍청하게도」- 아침에 텔레비전을 켜니 화면 상단에 평소와는 다른 글자가 보였다. EBS가 아니고 "교육방송"으로, KBS는 "한국방송", MBC는 "문화방송"으로 되어 있었다. SBS는 그대로였다. 한글날이니 하루라도 그렇게 써본다는 의도일까? 글쎄······ '하루만이라도'가 어떤.. 2022. 10. 9.
창밖에는 비오고요 구름으로 하늘이 어둑어둑하다. 비가 내리고 바람도 세차게 분다. 을씨년스런 강변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작은 개가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모자를 쓴 사내는 몸을 웅크린 채 우산에 의지하여 맞부딪쳐오는 비바람을 막아보려 애를 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속절없이 이미 몸이 다 젖었을 것 같다. 여자도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걸을 뿐 상황이 크게 나아보이지는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 이 궂은 날씨에 길을 나선 것일까. 모진 걸음의 끝에는 따뜻한 위로와 향기로운 차 한 잔이 기다리고 있을까?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비바람과 마주서거나 일상의 등짐이 무거워지는 시간을 만나게 된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하루가 유난히 무겁게 흘러가기도 한다. 그럴 때 '또 한 번만 지면 다 진다'는 아이의 긍정적인 다짐을 떠올려 본다.. 2020. 9. 18.
간결해서 특별한 보리밥 한 공기 반찬은 세 가지 김치와 된장과 상추. 먼저 상추쌈을 먹는다. 상추 한 잎에 보리밥 한 숟갈 김치 한 조각- 이래서 김치 맛, 상추 맛을 즐긴다. 다음은 보리밥 한 숟갈 떠먹고 된장 한 젓갈 찍어 먹는다. 구수한 된장 맛이 구수한 보리밥으로 다시 더없는 된장 맛이 된다. 이제 보리밥이 3분의 1쯤 남았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보리밥만으로 먹는다. 보리밥만 떠서 천천히 씹노라면 달고소한 보리밥 맛이 천하일품이다. 보리밥 한 공기로 세 가지 맛을 즐기는 이런 밥먹기는 내가 먹는 버릇이고 내가 깨달은 방법이고 내가 찾아낸 밥먹기다. 절대로 남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사람마다 버릇도 다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저마다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일이다. 다만 나는 김치를 .. 2020. 8. 23.
아이처럼 살다 맑은 바람이 부는 산에 오르면 온 몸의 묵은 찌꺼기가 바람에 실려 빠져나간다. 꽃에 얼굴을 가까이 하면 그윽한 향기가 가슴과 영혼에까지 가득해진다. 그것이 설혹 일시적인 착각이라고 해도 여운은 일생을 관통할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서울도서관에 이오덕과 권정생, 그리고 일본인 하이타니 겐지로의 삶을 돌아보는 전시회 “아이처럼 살다”가 열리고 있다. 그들 삶의 공통 주제는 아이들과 문학과 자연이다. 이오덕과 권정생은 내게 학창 시절이래 낯익은 이름이다. 권정생은 어릴 적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동화작가이기도 했다. 이전에 이 블로그에도 두 사람(의 책)에 관한짧은 글을 올린 적이 있다. - 이오덕 : http://jangdolbange.tistory.com/682 - 권정생 : http://jangdol.. 2015. 5. 15.
『일하는 아이들』 학창시절 고(故) 이오덕선생님의 책,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이란 교육 수필집과 "시정신과 유희정신"이란 문학평론집을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있다. 선생님이 지은 "우리글 바로쓰기"는 여전히 나의 글쓰기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그때 만났던 어린 학생들의 글을 30여 년만에 이오덕선생님의『일하는 아이들』을 통해 다시 읽어보았다. 가난한 시절. 어린 동심들이 그 가난을 살아내는 모습이 거기 있었다. 때로 슬퍼하고 때로 기뻐하며 그러나 언제나 정직하게 자신의 생활을 바라본 글이 또한 거기에 있었다. '공은 공은 바보 . 살짝만 건드려도 펄쩍 뛰며 화를' 낸다거나, '제트기는 제트기는 심술장이야, 잠자는 우리 아기 잠깨어 놓고 어머니가 야단칠까 도망갑니다' 하는 식의 말 장난이 거기에는 없었다. 비록 가난은.. 2013.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