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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4 - 한용운

by 장돌뱅이. 2014. 5. 10.

 


*위 사진 : 서울 성북동, 일제 강점기에 한용운이 생의 마지막을 보낸 심우장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한용운의 시「님의 침묵」은 어려웠다.

그의 또 다른 시 제목처럼 ‘알 수 없어요’였다.
시와 함께 실린 송욱이라는 분의 해설은 고등학생인 내게 시만큼(시보다) 어려워서 싫었다.

어려움은 한용운의 ‘님’에서 왔다. ‘님’이 포괄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 때문이다.
그것은 학창 시절 우리가 배운 대로 애인일 수도 있고, 조국이나 민족일 수도 있고,
수도자로서 추구하고 있는 절대적인 진리나 깨달음일 수도 있다.
한용운이 글에서 밝혔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편지와 면회와 휴가를 ‘군자삼락(軍子三樂)’으로 부르던 군대 시절,
시집 『님의 침묵』을 처음으로 읽었다.
근엄한 의미를 젖혀두고 ‘님만 님’이라는 의미로 읽었다.
편지를 주고 받고, 면회를 오고, 휴가를 가면 만나는 ‘님’.
군대라는 특수 상황 속의 감정에 충실한(?) 독서법이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위안이었다.

이제 그 ‘님’과 30년을 함께 살면서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다시 읽어도 한용운의 시에서는 묵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이것이 정말 백년 전에 쓰여진 시일까?
여전히 싱싱하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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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에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히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는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똘뀌똘” 울겠습니다.
                                                         -「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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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간다. 그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오, 내가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간다.

   그의 붉은 입술, 흰니, 가는 눈썹이 어여쁜 줄만 알았더니 구름 같은 뒷머리,
  실버들 같은 허리, 구슬 같은 발꿈치가 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걸음이 걸음보다 멀어지더니 보이려다 말고 말려다 보인다.
   사람이 멀어질수록 마음은 가까와지고 마음이 가까와질수록 사람은 멀어진다.
   보이는 듯한 것이 그의 흔드는 수건인가 하였더니 갈매기보다도 작은 조각구름이 난다.

                                                                               -「그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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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 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어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해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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