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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5 - 백석

by 장돌뱅이. 2014. 5. 10.


*위 사진 : 2007년 경북 예천의 삼강리를 여행할 때 보았던 이 시대 남은 마지막 주막.
             1900년께 지어졌다는 주막은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방치되었다가 2005년인가 경북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초가로 바꾸는 등 '복원' 사업이 진행될 거라는 소식이 있었으니 지금은 사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국생활을 하다보면 떠나온 고향 생각에 사로 잡힐 때가 있다.

길을 가다가 낯익은 풍경을 보았을 때,
무심코 컴퓨터 파일 속에 저장해둔 지난 사진을 클릭했을 때,
늦은 밤 출출한 속을 쓸어보다가 어떤 음식이 떠올랐을 때나
퇴근길 골목 식당의 삼겹살과 소주가 놓인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그리워질 때.....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지내던 감정은 미세한 인연이 스치기만 하면  
곧바로 생생하고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오랜 여운을 남긴다.
이 토요일 아침 느긋하게 읽던 박원식의 글도 그랬다.

   남도의 백반집만큼 남도땅 특유의 정서를 잘 대변하는 곳도 드물 것 같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수두룩히 올라오는 반찬 그릇들. 그 그릇 속 물건들의 
  
신통방통한 맛깔스러움이 안겨 주는 만족감을 누리는 행사를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완도의 어느 선창가 백반집에서, 강진의 시장통에서, 해남땅
   우슬재 너머 허름한 
기사식당에서 먹었던, 허기진 식욕을 채워 주려고 들어와
    마침내 영혼의 
한 오라기마저 휘어 감고 대장 속으로  녹아들어간 감미로운
   백반 맛은 두고두고 값진 추억이 되었으니. 그
러므로 남도의 밥집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마다 매번 회심의 미소가 입가로 비어져 나오는 게 아니었던가.


그랬지! 남도의 백반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무슨 깨달음처럼 들면서 언젠가 아내와 여행길에 들렸던 남도의 식당들이 떠올랐다.
음식과 식당, 산과 강, 함께 시간을 나눈 사람들과의 기억은 문득 먼 곳까지 흘러온 나의 삶을 살며시 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살고 있구나!" 하는,  탄식도 아니고 감탄도 아닌, 스산함도 아니고 신명도 아닌, 
그냥 아침처럼 맑고 깨끗한 그러면서도 조금은 서럽기도 한 느낌 끝에 떠오른 시 한 편.


   호박잎에 싸 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모알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이 뵈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이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백석의 시, 「주막」-

백석(白石)은 김소월과 같은 평북 정주 출신의 시인으로 일제 강점기에
우리 말과 정서로 가득한 시를 쓴 시인이다.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만 경험을 해보았을 뿐,
여행길에 주막에 직접 묵어본 적이 있을리 없는 세대지만
시인이 그린 주막의 풍경이 내게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특히 "장고기 잘 잡는 뻐드렁니의 범이라는 아이"는 어릴 적 친구 같다.

몇몇 단어의 뜻풀이를 붙여둔다.
   

*붕어곰    : 붕어를 오래 고아 끓인 곰국
*팔모알상 : 테두리가 팔각으로 만들어진 개다리소반
*장고기    : 잔고기. 피라미, 소사리 등 몸피가 작은 고기.
*울파주    : 울바자 대, 수수깡, 갈대 따위를 엮거나 걸어서 만든 바자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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