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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강원도 두릅

by 장돌뱅이. 2024. 5. 3.

입맛은 오래 반복해서 먹어온 결과라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있나 보다. 내게 두릅이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먹어 익숙해진 맛이 아닌데도 그 어느 음식보다도 좋아한다.

두릅을 처음 먹어본 때는 아마 군대 시절인 것 같다.
야외 훈련을 나가면 기가 막히게 야생의 식재료를 잘 구해오는 선임병이 있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산과 들은 그에게 온갖 거대한 식품 창고인 듯했다. 비록 서울이지만 변두리에서 태어나 나도 산을 쏘다니며 산딸기, 밤, 도토리, 깨금 따위를 따고 칡도 캐봤지만 그는 차원이 달랐다.
그냥 눈에 보이는 열매에 더하여 두릅이나 도라지, 더덕은 물론 심지어 뱀까지도 잘 잡았다.
특히 두릅은 냄새만으로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또 칡을 캐서 말려두었다가 겨울에는 건빵 속에 든 알사탕을 넣어 달콤쌉쌀한 칡차를 끓여 내는 주부 같은 알뜰함도 지니고 있었다.

식사 시간에 그는 한나절 동안 수통에 간장과 함께 가늘게 찢어 넣어두었던 두릅이나 도라지를 몇 가닥 내 밥 위에 올려주곤 했다. 다른 양념 없이 맨간장에 절이기만 했는데도 그 맛은 놀라웠다.
두릅도 그랬다. 짠맛 대신 입안 가득
쌉싸름하면서도 싱그러운 향기가 퍼졌다.

마트에서 사 먹는 더덕이나 두릅에서는 (당연하게도) 그런 향이 없다.
하지만 달리 자연산을 구할 방법이 없고 있다한들 비쌀 테니 그냥 그걸로 만족하며 지낸다.
두릅에는 땅두릅이 있고, 개두릅도 있고 참두릅이 있다고 한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게 더 좋은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조선 중기 사람인 저촌(樗村) 심육(沈錥, 1685년 ~ 1753년)은 친구가 보내준 두릅을 먹고  입안에 맑고 새로운 기운이 생겨난다면서 시를 지었다.

“강변 살아 산이 아득히 멀기만 한데, 맛깔스러운 두릅나물이 밥상에 올라왔네.
헤어진 뒤에도 여전한 벗의 마음 느끼며, 보배 같은 산나물 맛에 파안대소한다오.”

며칠 전 강원도에 사는 지인이 귀한 두릅을 보내왔다.
자연산 참두릅이라 맛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아내와 함께 옛 사람만큼 즐거워하며 세끼 연속으로 숙회와 전을 푸지게 만들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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