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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1367

행복한 영화보기 8. -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학창 시절, 소설 ‘닥터 지바고’를 읽으며 상상하던 감동적인 풍경을 깨뜨리기 싫어 (그 무렵 단체관람으로 대부분의 학생이 보았던) 오마샤리프 주연의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보지 않겠다던 녀석이 있었다. 그 후로 많은 영화화된 문학작품을 보면서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보다 훨씬 장대하고, (소설은 아니지만) 이태의 남부군은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부군보다 더 생생한 울림이 있었다. 문제는 상상력의 힘이었다. 활자를 읽으며 머리로 그리는 모습은 언제나 읽는 사람이 상상해 낼 수 있는 최고의 것이 되지만 시각적으로 보이는 화면은 상상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어떤 고정된 개념을 주입하게 된다. 따라서 그렇게 가시화시킨 어떤 형상이 소설로 먼저 읽을 때 머릿속.. 2005. 2. 25.
행복한 영화보기 7. -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폴란드에 살고 있던 유태계 피아니스트이다. 1939년 독일은 유태인들을 게토에 격리 수용시킨다. 그리고 강제노역과 죽음의 가스실로 향하는 기차, 시도 때도 없이 자행되는 섬뜩한 학살이 이어진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여인은 대답 대신 느닷없는 독일군의 총에 쓰러지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열에서 무작위로 지명된 사람들은 그냥 지명되었다는 불운만으로 죽임을 당한다. 거침없이 머리에 총을 쏘아대다 총알이 떨어지면 탄창을 갈아 끼워 가며 죽인다. 그 와중에 스필만은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그러나 굶주림과 부상.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 폐허가 된 바르샤바의 텅 빈 집을 뒤지던 스필만은 독일군 장교와 마주친다. 누구냐고 묻는 말에 스필만은 피아니스트라고 대답한다. 그 절체절.. 2005. 2. 25.
울산 시절 6. - 영화 『캐스트 어웨이』 주인공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다 예상치 못한 악천후에 휘말린다. 대개의 경우 칠흑 같은 어둠 속이다. 번쩍이는 번갯불 사이로 거센 빗줄기가 드러난다. 비행기는 바다로 추락하고 설상가상으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쳐온다. 의식마저 희미해져 가는 주인공의 얼굴이 FADE-OUT된다. 다음에 이어지는 화면은 언제나 맑고 잔잔한 해변가에 의식을 읽고 쓰러져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신성일・엄앵란의 해변 달리기’ 장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는 영화의 장면은 언제나 이렇게 상투적이다. 좀더 다른 방식은 없을까? 영화 『SIX DAYS SEVEN NIGHT』의 해리슨 포드가 그랬고 『캐스트 어웨이(CASTAWAY)』의 주인공 ‘척’(톰 행크스)도 그렇다. 표류하기 전까지 그는 일분, 일초를 다투.. 2005. 2. 16.
울산 시절 5. - 영화 『집으로 가는 길(THE ROAD HOME)』 여러 가지 재료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진귀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를 대가라고 한다면 흔하디 흔한 일상의 재료를 가지고도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요리사도 대가일 것이다. 아내와 함께 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장이모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이란 중국 영화는 그 후자에 해당되는 경우다. 시골학교. 새로 부임온 총각 선생님을 좋아하며 애태우는 청순한 시골 아가씨 디(장쯔이). 이런 설정과 이야기는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란 노래에서부터 얼마 전 보았던 전도연 이병헌 주연의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 이르기까지 흔하다. 이런 상투적 소재를 가지고 장이모우 감독은 상큼한 사랑이야기 한 편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풍경이 아름답다. 언덕을 돌아가는 시골길과 푸른 언덕, 누렇게 익어.. 2005. 2. 15.
울산 시절 4. - 영화 『공동공비구역』 JOINT SECURITY AREA. 줄여서 JSA라고 한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처음 알았다. 판문점 내 공동경비구역은 군사정전위 본부지역 회담장을 중심으로 한 지름 8백m의 원형 지대라고 한다. 영화는 이 구역 내의 다리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남북한 경비병들 간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밤 북측초소에서 총소리가 울리며 인민군 둘이 살해당한다. 이 사건을 놓고 남북의 주장은 정반대로 엇갈린다. 남쪽은 이수혁 병장(이병헌)이 북측에게 납치됐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는 반면 북측은 현장에서 팔에 총상을 입은 채 살아남은 인민군 중사 오경필(송강호)의 증언을 토대로 남측에서 기습공격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책임 수사관으로 (6・25 전쟁 뒤 제3국을 택한 인민군 장교 출신의.. 2005. 2. 15.
울산 시절 3. - 영화《글래디에이터》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인기 있던 중국 영화 ‘외팔이’ 시리즈가 있었다. 주연은 왕우라는 배우로 스승을 죽이고 자신의 한 팔을 자른 원수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그 외에 그가 주연한 이나 등 대부분의 영화가 주로 부모나 연인, 혹은 스승을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돌아온 주인공의 ‘복수혈전’식 이야기이다. 는 한마디로 ‘그런 중국 영화의 로마버젼’이라고나 해야겠다. 대신에 이 영화는 단순한 내용이란 약점을 엄청난 물량 공세로 만회하고자 한다. 도입부의 웅장한 전투장면은 그 끔찍한 살상 장면과 더불어 정말 대단하다. 허리우드가 아니면 쉽게 만들 수 없는 장면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해 냈다는 로마의 원형 경기장의 모습도 역시 대단한 볼거리이다. 거칠고 섬뜩한 장면 .. 2005. 2. 15.
울산 시절 2. -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토요일 저녁. 저녁을 먹고 나서 아내와 영화 를 보러 갔습니다. 영화 《초록물고기》로 아내와 난 이창동 감독의 팬이 되었는데, 소설가 출신이라 그런지 구성과 줄거리가 짜임새 있고 탄탄했습니다. 이번 영화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들꽃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젊은이가 80년대라는 험난한 시대를 통과하면서 몸도 마음도 절름발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거꾸로 더듬어가는 영화였습니다. 그 절망의 시절에 절망하지 않고 뜨거운 '불'로 살았던 이 땅의 많은 젊은 모습들이 비껴간 것은 아쉬웠지만 아내와 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눈물이 핑 도는 애잔함으로 그 시대를 돌이켜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더 감정적으로 밀착되었던 것 같습니다. 유신, 긴급조치, 10.26, 비상계엄, 은.. 2005. 2. 15.
울산 시절 1. - 술 '자알' 마시는 여자와 못 마시는 남자 83년부터 2001년 초까지 우리 가족은 울산에 살았습니다. 옛 디스켓을 뒤져보니 그 시절에 쓴 글이 몇 개 남아 있어 올려봅니다. (아래 글은 아마 99년 정도에 쓴 것 같습니다.) ==========================================================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결혼 후 아내가 술을 마시게 된 것도 그런 변화 중의 하나이다. 연애 시절 아내는 소주건 맥주건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좌석에 앉아서도 음료수만 홀짝거렸다. 그러던 아내는 결혼 후 십여 년이 지나면서 어느덧 애주가가 되었다. 냉장고에 맥주 한두 병씩을 꼭꼭 챙겨두고 걸핏하면 “오늘 한잔 어때?” 하며 술을 하자고 한다. 내가 “별로 생각이 없는데······ 속이 좀 안 좋아서·.. 2005.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