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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1367

웁시다 시인 황지우는 1980년 5월 서울대에 재학 중이었다.1972년 입학했는데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동하여 강제 입영되었다가 복학하여 논문 준비 중이었다.그 무렵 그는 광주에 있던 큰형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광주가 쑥대밭이 되었고 지금도 금남로에 상공에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으니 황지우는 물론 동생도 절대 광주에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동생도 지명수배 중이었다.그렇게 말하면서도 큰형은 통역을 자원하여 외신기자들에게 계엄군의 만행을 알려 그가 번역해 준 내용이 를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고 한다.5월 30일 황지우는 '땅아 통곡하라'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만들어 가방에 담고 집을 나섰다. 정장을 하고 꽃다발을 들어 위장을 하였다. 종로 단성사 앞에서 그 유인물을 뿌리고 이동하다가 청량리 지하철 역에서 체포되.. 2024. 5. 18.
장미 축제 축제가 흔하다. 특히 봄철엔 여기저기, 개나리꽃, 벚꽃, 유채꽃, 진달래, 철쭉에 장미까지 꽃만 좀 피어 있는 곳이면 축제를 붙인다. 자연적인 것도 있고 인공적으로 심은 것들도 있다.전국적으로 축제가 800개 정도가 된다고 하던가. 과연 그중  몇 개나 지역 주민들의 공감과 참여 속에 축제가 이루어지는 것일까? 서사가 없는 축제가 축제일 수 있을까?그것은 그냥 국민의례 같은 건조한 행사거나 소비적 놀이판일 뿐이다,라고 '개폼'을 잡아 본 적이 있다.그러나 그런 시큰둥에 무색하게 태릉입구역 근처 장미 축제장엔 사람들로 가득했다.핸드폰 카메라를 하늘로 향해야만 오고 가는 인파들의 초상권을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어찌 되었건 장미꽃 사이를 걷는 게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아내와 한가롭게 장미꽃 밭과 터널 사이.. 2024. 5. 17.
한심한 시절의 독서 수상하고 한심한 시절이다. 나로서는 골방에서 책을 읽거나 읽은 책의 기억을 되살리며 지낼 뿐이다. 백면서생이자 백수인 내게 현실의 한심함이 그리 특별하거나 '창의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아마 지난 역사책에서 보았던 기시(旣視)감 때문일 것이다.청일전쟁 무렵 일인들의 조선 진출이 활발해졌다. 그들은 토지와 가옥을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시에 일인들의 토지 매수 대금은 대부분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지출되었다고 한다.개항장 10리 이내를 넘어 그 바깥 지역까지도 조선인 앞잡이를 내세워 본격적으로 사들였다.송정섭(宋廷燮)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조선정부로부터 월미도 개발권을 따낸 후 일본인 요시까와(吉川佐太郞)에게 그 권리를 팔아버렸다. 요시까와는 월미도 주민들을 강제로 축출했고 그 자리에 일본은 .. 2024. 5. 16.
하필 부처님 오신 날에 그럭저럭 사는 거지.저 절벽 돌부처가망치 소리를 다 쟁여두었다면어찌 요리 곱게 웃을 수 있겠어.그냥저냥 살다보면 저렇게머리에 진달래꽃도 피겠지.- 이정록, 「진달래꽃」-부처님 오신 날 아침.시를 읽으며 '그래 모나지 말고 좀 너그럽게 살자' 혼자 다짐해 보았다.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길래 아침 산책을 했다.햇빛이 하도 맑아 걷다가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푸른 나뭇잎 사이로 맑은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사이 어느새 구름이 하늘을 채웠다.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날씨와 달리 부부싸움은 예보가 없이 불시에 들이닥친다.발단은 언제나 사소하지만 순식간에 열대폭풍우로 발달한다.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말이 어깃장 나가기도 한다.오늘도 그랬.. 2024. 5. 15.
꽃 아닌 것이 없게 하소서 아내가 다친 상처를 꿰맸던 실밥을 풀었다.늙수그레한 의사는 덤덤한 말투로 '잘 되었다'고 아내를 안심시켜 주었다."축하해!""이게 축하할 일인가?"나의 말에 겸연쩍어하며 아내는 웃었다."오월이니까."나는 괜스레 생뚱맞은 말로 시인 흉내를 내보았다.먼 곳 혹은 특별하거나, 진부한 일상과는 다른 것들에 높은 의미를 부여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완전히 그 미망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때로 무료하기까지 한 일상의 담백한 맛을 깨닫곤 한다.봄이 지나가면서 때맞춰 이런저런 꽃들이 피었다가 사라진다. 목련에 개나리, 진달래와 벚꽃이 피는가 싶더니 철쭉이 피고, 지금은 등나무꽃과 정향나무꽃과 붓꽃과 수국과 해당화와 장미가 피었다. 낯선 곳에서 서성이지 않아도 아파트 화단에, 문화회관 앞에, 산책하는 강변과 호숫가에 산.. 2024. 5. 14.
남산 예장공원 3 예장공원에서 잠시 계단을 오르면 남산둘레길이 나온다.남산의 중허리에서 남산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7.5km의 길이다.나무 그늘을 따라 평평한 길을 천천히 걷는 맛이 그만인 곳이다.길 좌우의 나무들은 철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지금은 한창 물이 오르는 연두빛이 싱싱하다.남산은 서울의 축복이다. 높이가 265미터로 낮아서 오르기 편하고 그럼에도 아름답고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도 있다.남산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서울의 안산(案山)으로, 진산인 북한산의 책상(案)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는 남산에 국사당을 지어 목멱대왕이란 산신을 모시고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남산을 목멱산(木覓山)으로도 부르게 된 내력이다.  남산은 나무가 많다 하여 목밀산(木密山)으로 부르기도 했다.특히 소나무가 많아 .. 2024. 5. 13.
남산 예장공원 2 명동역 1번 출구를 나가 예장공원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쪽 담에 "기억의 터"라는 큰 글자가 보인다. 거기서 안내 표지에 쓰여진 대로 결코 '할머니들이 살아온 세월보다 더 멀지 않은 길'만큼 걸어가면 "기억의 터"가 나온다. 예장공원을 가로질러 남산연결다리를 건너면 된다."기억의 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그 아픔을 기리는 공원이다.2016년에 국민 1만9755명의 모금으로 조성되었다.원래 '기억의 터'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의 이름을 새긴 (야만의 역사를 직시하는) '대지의 눈'과, 할머니들과 시민들을 연결한다는 의미의 세상의 배꼽'이란 조형물이 있었다.  그러나 공원을 설계하고 조형물을 제작한 임옥상 화백이 성추행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후  작년에 그의 작품들은 모두.. 2024. 5. 10.
그런 날에도 무싯날에도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부는 모양이다.화려할 정도로 노란 밀밭은 물결치며 뒤척이고 있다.짙푸름을 넘어 검푸른 하늘도 요동을 치는 것 같다.붉은빛이 강렬한 황톳길은 세 갈래고 그중 가운데  길은 밀밭을 지나 하늘과 맞닿아 있다. 허공엔 검은 까마귀 떼가 점점이 날개를 펄럭이며 길게 밀려온다.고흐가 죽음이 멀지 않은 시기에 그렸다는 선입감이 있어서 일까?개개의 형상과 색은 발랄하거나 열정적인 것 같은데 전체적으론  뭔가 두렵고 공포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당장은 화창하지만 잠시 후엔 거대한 태풍 같은 재난이 불어올 수도 있을 것 같은······대체적으로 좋은 일은 예정되어 있지만 나쁜 일은 정면에서 느닷없이 앞통수를 후려치며 온다.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베토벤의 을 듣고 유튜브로 김어준의 >를  보는 것도 .. 2024. 5. 9.
책 『외로움의 습격』 한나 아렌트(Hannah Arent)는 이렇게 말했다. "외로움이 이토록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이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 영어권에서는 16세기까지 외롭다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달리 말해 외로움이란 그 이전까지는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거나 혹은 표현할 필요가 없던 것으로, 그 이후 사회적 변화와 함께 찾아온 새로운 감정이라 할 수 있다.『외로움의 습격』(김만권 지음)은 외로움에 대한 정의, 외로움이란 개념의 등장 배경과 그 철학적, 사회적, 정치적 의미에 대한 탐색이다. 특히 디지털 세대가 어떻게 노동을 과소 평가하고, 어떻게 분배의 격차와 외로움과 편견을 가속시키는가를, 기기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평이한 말로 설명한다.외로움은 "이 세상에서 타자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갈 터.. 2024.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