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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1367

봄비 내려 좋은 날 순천 웃장 파장 무렵 봄비가 내렸습니다.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 갔는데 파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생선 오천원 조갯살 오천원 도사리 배추 천원 장짐 내게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앞서 가다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 쓴 할머니 몇걸음 지나쳐서 돌아보며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 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 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여주는 아내 횡단보도 건너와 돌아보았더니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꽃 피겠습니다 - 김해화, 「아내의 봄비」- 손자저하와 .. 2024. 4. 15.
오늘이 바로 그날!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깊은 침묵을 좋아한다 나는 빛나는 승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의미 있는 실패를 좋아한다 나는 새로운 유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고전과 빈티지를 좋아한다 나는 소소한 일상을 좋아한다 그래서 거대한 악과 싸워나간다 나는 밝은 햇살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둠에 잠긴 사유를 좋아한다 나는 혁명, 혁명을 좋아한다 그래서 성찰과 성실을 좋아한다 나는 용기 있게 나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떨림과 삼가함을 좋아한다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바쳐 너를 사랑하기를 좋아한다 - 박노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이외에도 많다. 아내와 마주 보고 커피 마시기, 음악 듣기,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있기, 동남아 호텔 수.. 2024. 4. 10.
투표가 용천검이다 이번 선거는 태어나 처음 사전투표로 했다. 빨리 하면 투표권도 1+1의 혜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하면서. 대파를 가지고 입장이 안 되니 뭐니 꼼꼼한(?) 선거관리의 정권관리가 애먼 대파만 서럽게 만들었다. 한 가지 새삼스럽게 되새김질 한 사실은 있다. 세상엔 원래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다는 사실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는 정치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이튿날엔 촛불집회에 나갔다.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행진은 합정역에서 홍대입구까지 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 부르며. 지금은 그 노래가 나오던 시절로 회귀한 '레트로'의 시대다. 동학의 최제우는 부정하고 불평등한 세상의 개벽을 위해 칼노래(劍訣)를 불렀다. 時乎時乎(시호시호) 이내 시호 不再來之 時乎(부재래지 시호)로다 萬世一.. 2024. 4. 8.
한일전은 '대파'가 맛!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FC서울 팬이다. 올해 잉글랜드 대표와 맨유 출신의 린가드 선수까지 가세하여 리그 우승은 물론 ACL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있다. 시즌 초 스타트는 시원찮았지만 요즈음은 다행히 조금 반등하는 추세다. 국가대표팀에도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특히 일본과 붙으면 순도 100%의 소위 '국뽕'이 된다. 학창 시절 축구를 같이 한 친구가 말했다. "3 : 0쯤 되면 게임을 계속 보기가 시시해지는데 일본하고는 차이가 크게 벌어질수록 재미있어." 그때 같이 있던 우리 모두 한일전은 '대파(大破)가 맛'이라는데 동의를 했다.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이 공공장소에서의 욱일기 전시 제한을 폐지하는 조례를 발의했다. 논란이 거세자 하루 만에 이를 자진 철회했다. 아래 영상은 철회하기 전 이 소식을.. 2024. 4. 6.
청명, 좋은 시절 어제는 청명(淸明)이었다.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는 청명엔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논밭에 가래질을 하고 못자리판을 준비한다고 한다. 아내와 서울숲을 걸었다. 벚꽃과 목련은 한창이었고 다른 꽃들도 피어나고 있었다. 날이 흐렸지만 푸근해서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은 부드러웠다. 청명 좋은 시절 비는 흩뿌려 길 나선 나그네의 애를 끊누나 묻노니 주막은 어디쯤인가 목동은 손을 들어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켜주네 (淸明時節雨紛紛 청명시절우분분) (路上行人欲斷魂 노상행인욕단혼) (借問酒家何處有 차문주가하처유) (牧童搖指杏花村 목동요지행화촌) - 두목(杜牧), 「청명」- 에 "이도령의 년광(年光)은 이팔(二八)이요 풍채(風采)는 두목지(杜牧之)"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 나온 두목지는 바로 위 시를 쓴 당나라 시인 두목이.. 2024. 4. 5.
가슴에서 가슴으로 *레모니안 영상 편집 수추는 사람들의 구름 속에서 앉아 조용히 노래를 흘려보냈다. 그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고 힘을 솟구치게 해서 살아 있는 환희를 갖도록 했다. 노래하는 그의 얼굴은 사람들에게 무언지 모를 믿음을 전파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의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몸짓에서 몸짓으로 퍼져나가 모든 사람들이 목청을 합하여 저자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렀다. 수추의 거문고 소리와 노랫소리는 저자에 모인 군중들의 제창에 먹히어 들리지 않았으나, 그 곡조의 가락과 춤은 그대로 수추의 것에서 모든 사람들의 것으로 합쳐졌던 것이다. - 황석영 단편소설, 「가객(歌客)」중에서 - 사진과 영상, 인용글에 내가 감히 덧붙일 건 없다. 그저 간절함과 절실함을 실어 볼 뿐. 2024. 4. 4.
저녁 노을 저녁 산책 길에 아름다운 노을을 만났다. 걷던 길을 멈추고 서서 보았다. 다시 걷다가 또 멈췄다. 누가 잡아만 준다면 내 숨 통째 담보 잡혀 노을 만 평쯤 사두고 싶다 다른 데는 말고 꼭 저기 폐염전 옆구리에 걸치는 노을 만 평 갖고 싶다 그러고는 친구를 부르리 노을 만 평에 꽉 차서 날을 만한 철새 한 무리 사둔 친구 노을 만 평의 발치에 흔들려줄 갈대밭 한 뙈기 사둔 친구 내 숨에 끝날까지 사슬 끌려도 노을 만 평 사다가 친구들과 옛 애인 창가에 놀러가고 싶네 - 신용목, 「노을 만 평」- 장엄한 노을 앞에 서니 내가 바라는 많은 것들이 작아 보인다. 누가 그랬다. 소망은 수천수만 가지일 수 있지만 희망은 하나뿐이라고. 희망은 언제나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내 숨을 통째 담보 잡혀서라도.. 2024. 4. 4.
소설 『그리고 봄』 조선희의『그리고 봄』은 2022년 대통령 선거 이후 한 가족의 갈등과 화해에 관한 이야기다. 60대의 엄마와 아빠는 퇴직을 하였고, 맏딸은 직장에 다니고 아들은 취준생이다. 부모는 대선에서 민주당을 찍었고 딸은 3번을 아들은 이른바 '2찍남'이다. 아들을 제외한 가족은 한 때 심상정에게 후원금을 낼 만큼 팬이었으나 '지난 총선 이후 엄마 아빠는 정의당이 길을 잃었다고 팬심을 거뒀다.' 소설은 그런 시간적·정치적 배경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가족 간 정치적 의견 차이가 소설의 첫머리에 나온다고 해서 정치 문제나 그로 갈등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전부가 아니다. 소설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차, 퇴직, 취업, 연애, 동성애까지 다양하고 보편적인 우리 시대의 갈등이 축약하여 담겨 있다. 소설 속 부부는 나와 .. 2024. 4. 3.
소설 『두 도시 이야기』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클의 한 선배가 두 권의 소설을 추천해 주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였다. 경제공황기에 집과 땅을 잃고 떠도는 가족을 그린 존 스타인벡의『분노의 포도』는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풍요의 상징으로만 여겨지던 미국의 잔혹사가 충격이었고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안간힘이 감동이었다. 꼼꼼히 읽는데도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문장이 건조했어도 공감은 깊었다. 이와 반대로 『두 도시 이야기』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좋아하는 선배의 권유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면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영상 독서 모임인 에서 3월 도서로 선정되어 근 50년 만에 다시 읽어도 느낌은 비슷했다. 스토리와 구성은 복잡하.. 2024.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