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 재미. 재미가 있어 시를 읽는다. 솔직히 요즈음 시는 좀 어려워졌다.
세상이 복잡해지니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도 덩달아 복잡해진 탓일 것이다.
혹은 나의 감수성이 세파에 찌들어 메말랐거나 미처 젊은 시인들의 정서를
쫓아가지 못해서 나오는 괴리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어려운 시는 싫다. 복잡한 시적 기교나 장치, 상징이나 은유가 없는 단순명료한 시
- 그래서 구태여 (종종 시보다 어려운) 해설이 필요 없는 쉬운 시가 나는 좋다.
이해하는 만큼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시도 마찬가지다.
쉬운 시라고 해서 쉽게 쓰여진 시는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수준이 낮은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쉬운 언어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시야말로 더 힘든 창작의 과정을
통해서 나왔을 것이다.
내가 읽은 쉬운 시, 기억에 남는 시를 모아보려고 한다.
시가 뭔지도 모르는 내가 이해하고 좋아한다는 것이 유일한 선정 기준이다.
시적 성취도이나 문학사에 기념비적 운운 하는 전문가의 판단과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처음 읽은 시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 읽은 시는 아닐지 몰라도 유년의 맨 끝 기억에 남아 있는 시 하나는 있다.
뜻밖에도 러시아 시인 뿌시낀의 시다. 물론 그때는 그 시를 쓴 작가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러나 그 시를 최초로 읽은 곳은 정확히 알고 있다. 동네 이발관이었다.
머리를 깎을 때면 어른들이 사용하는 이발소 의자 팔걸이에 나무판을 걸쳐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야 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곳에서 고개를 들면 이발소 거울 위쪽
흰 벽면에 붙어있는 액자에 이 시가 들어있었다. 이발소 그림이 아닌 이발소 시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 알레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뭔지, 그게 왜 우리를 속이는지 알 턱이 없는 어린 나이였지만
머리를 깎을 때마다 반복해서 읽다가보니 그런대로 우울하고 슬픈 오늘을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메시지는 따뜻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푸쉬킨은 아내의 염문에 분노하여 연적과 결투를 벌인 끝에 총탄에 맞아 1837년에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시에서는 긍정의 감성을 노래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시 대로 살기 힘들었나 보다.
삶은 종종 그렇게 우리를 배신한다.
우리가 삶을 배신하는 건가?
새해가 시작되었다.
50 몇 년 쯤 새해를 맞아보니 새해란 게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고 끝날 것’이라는 ‘통밥’이 쉽게 읽혀지지만
그래도 시작만은 원기왕성하게 하고 싶다. 큰 소리로 시를 읽어보자.
*2004.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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