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4일.
예산 축소로 예년에 비해 그 규모가 줄었다고 하지만
바닷가에서 보는 생일 축하 불꽃놀이는 장관이었다.
화려하게 명멸하는 불꽃 아래에 서서 아내와 나는 탄성을 지르며
거기 깊은 늪과도 같은 불황의 시간도 더불어 지나가길를 기원해 보았다.
200여 년 전 새로운 꿈과 희망을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세운 '자유와 정의, 창의와 실용, 용기와 모험의 나라'는 짧은 시간 내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나라가 되었다.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풍요로움을 약속 받을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
그러나 이제 성실한 노동은 미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미국이 여전히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나라지만 잘 사는 나라도 아니다.
건전한 사회의 바탕이자 척도인 중산층은 소멸하고 부의 편중은 심화된지 오래다.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도 'GOLDEN STATE'로 불릴 정도로 부자 동네였다.
캘리포니아를 하나의 국가로 친다면 그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0위권 이내로 거대하다.
그런 캘리포니아가 돈이 없어 주공무원의 급여와 서비스를 제공한 업체의 대금 지급을 어음(후불수표)으로 하기 시작했다.
공무원을 감원하고 각종 복지 정책을 축소하였지만 비어가는 금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인다.
사람들은 세수의 60%를 감당해온 고소득 3%가 경기 침체에 휘말려 그 역활을
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논리라고 해야 한다.
그동안 사회를 지탱해가는 원리나 가치로서 '자본의 논리'만을 편식한 결과로 경제 위기가 왔고,
그로 인해 첨예화된 양극화란 부실한 경제구조로 인해 위기를 흡수할 수 있는
탄력성을 잃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없었던 것이다.
자본은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양면성을 지녔다.
사회적 통제 장치가 없는 자유방임 상태의 자본은 이윤의 극한적인 추구라는 본성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
더더군다나 자유방임을 넘어 정책이나 제도로 보호되고 장려되는 '하이드'는 최대의 이윤과 생산성을
즐기는 한편으로 기준빈곤선 이하의 계층을 지속적으로 양산해낼 수 밖에 없다.
전 국민의 4분의 1 이상이 의료보험없이 지내는 나라가 미국이다.
사기업에 맡겨져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의 전형적인 기업이라고 해도 좋을 월마트는 철저하게 무노조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월마트가 마련한 노조 결성의 징후를 포착하는 요령에 관한 내부지침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지침에 따르면 관리자들은 직원들이 동료 집에서 자주 회합을 갖는다던가,
아니면 평소와는 달리 주위 사람들과 자주 대화한다던가 하면 주의해서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려되어야할 인간 관계의 덕목조차 불온시 되는 세상.
그속에서 인간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고립되고 파편화된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쉽게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나라라는 말도 있다.
그것은 물질적인 가난만큼이나 우리를 참담하게 만드는 재앙이다.
미국을 닮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듯 보이는 우리 사회는 어떤가?
심각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에 이런 귀절이 있다.
위정자 건 국민들이 건 최소한도 둘 중의 하나는 읽어 보아야 하는 부분이다.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
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떠한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변혁 내지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
인 것이다.
(20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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