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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8 - 황진이

by 장돌뱅이. 2014. 5. 10.

황진이(黃眞伊)에 대해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가 조선시대 최고의 명기였고, 박연폭포·서경덕과 함께 송도3절(松都三絶)로 불렸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사실 기록으로 전하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그의 행적에 관한 것은 주로 야담을 통해 전해질 뿐, 정확한 생몰 연대조차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가 지었다는 시조와 한시 몇 수가 남아있는 전부인 듯하다.
학창 시절, 우연히 접한 그의 시조 한 수는 나를 휘어잡았다.
교과서에 나왔던 “청산리 벽계수야......”로 시작하는 황진이의 또 다른 시조가 시시해 보일 정도였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모든 시는 ‘사랑의, 사랑에 의한, 사랑을 위한’ 시다.
그중에서도 남녀 간의 사랑은 통상적이면서도 가장 강렬한 주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럴 것이다.

내가 읽은 시중에서 나는 황진이의 시조만큼 호방하면서도 섬세하게 사랑과 그리움을 표현한 시를 보지 못했다.
동짓달 긴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낸다니!
그 기상이 말로만 전해 듣던 황진이답다.
그런가하면 그 오랜 기다림과 그리움을 봄바람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구비구비’ 펴겠다는 의지가 곧으면서도 나긋나긋하고 또 곱다. ‘서리서리’나 ‘구비구비’ 란 말 자체도 예쁘다.

입춘이 지났다.
누군가를 오래 기다려온 사람들에게 올봄엔 고운님이 봄바람처럼 찾아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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