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에서 돌아오니 아파트 화단의 봄꽃이 장관입니다.
아내는 창가로 다가갈 때마다 만개한 꽃들을 내려다보며
“어쩜! 저 꽃 좀 봐!” 하며 감탄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어느새 사월이 된 것입니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오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이고
엿듣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과서에서「윤사월」을 읽었습니다.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이 시의 색조를 묻는 중간고사 시험 때문입니다.
그때 나는 “초록”을 답으로 골랐고 정답은 “노랑”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송홧가루와 윤사월, 그리고 꾀꼬리라는
시어가 주는 노란 색감이 시를 관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업시간 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약간의 질책성의 어조로.)
나는 아무리 송홧가루가 날리고 꾀꼬리가 우는 윤사월의 산봉우리라도
초록의 색감이 더 강하지 않냐며 직접 산에 가 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우겨 보았지만
전세는(?) 역전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한 술자리에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후배에게 물었습니다.
“야 너도 이 시의 색조가 노란색이라고 생각하냐?”
억울함이 되살아났던지 나의 질문은 여전히 전투적이었습니다.
후배는 간단한 대답으로 나의 투지를 꺾어버렸습니다.
“당연히 노란색! 왜냐구? 자습서에 다 그렇게 나와 있으니깐. 형 공부 제대로 안 했구나.”
후배는 시를 감상하는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자습서가 우리 시를 망친다.”
이 시를 읽으면 문설주에 귀를 대는 외로운 처녀사의 마음으로
가만히 봄을 바라보며 느끼고 싶어집니다.
화사한 봄꽃과 차분한 봄비가 어울려 보이는 휴일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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