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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435

감은사 터에 흐른 시간 경주에 가면 늘 감은사( 感恩寺) 터를 빼놓지 않는다. 바닷가 가까운 야트막한 언덕의 폐사지엔 커다란 3층 석탑 2기만 남아 있다. 석탑은 가까이 다가설수록 육중해지고 우뚝해진다. 천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온 굳건함과 폐사지를 쓰다듬는 자상함의 농도가 언덕을 올라가면서 점점 진하게 몸을 감싼다. 동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곳에 앉아 탑을 바라보거나 탑돌이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그 느낌이 좋아 경주에서 가까운 울산에 살 때, 그리고 울산을 떠나온 후에도 감은사 터에 여러 번 갔다. 어린 딸아이와 함께 가고, 아내와 둘이서도 갔다. 지금 딸아이네 가족이 경주를 여행 중이다. 딸아이는 아이들을 감은사 터에 데리고 가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라고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 2023. 9. 7.
어린이대공원 어린이대공원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 갈래길 한쪽 야트막한 담장 아래 옛 왕릉에서 보았던 석조물들이 다소 어수선하게 늘어서 있다. 나는 그것을 공원을 찾는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마음대로 추측했다. 그렇다면 좀 더 가깝게 볼 수 있도록 출입을 자유롭게 할 일이지 통제선은 뭐 쳐 놓은 걸까 불만스럽게 여긴 적도 있었다. 문인석이나 무인석의 생김새도 여타의 왕릉과는 달리 유난스레 못 생긴 것도 불만을 부추겼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주 산책을 가면서도 그냥 무심히 지나치는 곳이었다. 그곳이 대한제국의 황태자 이척(순종)의 태자비 민씨의 능(陵)이 있던 자리라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민씨는 열한 살의 나이에 여덟 살의 황태자와 결혼하여 1897년 황태자비로 책봉되었으나 1904년.. 2023. 6. 24.
부산 아난티코브 딸아이네와 함께 대전을 거쳐 부산 기장에 있는 아나티 코브로 4박 5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어디를 가건 손자저하들과 하는 여행은 똑같다. 놀고 먹고 자고 놀고 먹고 자고· · · · · · 아난티에서 지척에 있는 해동 용궁사나 오래전에 다니던 칠암해변의 붕장어, 대변의 멸치회는 잊어야 했다.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다. 저하들과 노느라(모시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가 더 적절할 것이다. 나는 점점 힘에 부치고 저하들은 나날이 원기왕성해 지는 것이 문제일 뿐. *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Believe in Yourself - https://youtu.be/W_p_AX20YdY 2023. 6. 9.
경복궁의 현판 1 경복궁은 조선 초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뒤 맨 처음 지은 궁궐이다. '경복(景福)'은 '큰 복'이라는 뜻이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 따르면 한양 천도를 주도한 정도전은 '술은 이미 취하였고(旣醉以酒) 덕에 이미 배부르니(旣飽以德) 군자께서 만년토록(君子萬年) 큰 복을 누리소서(介爾景福)'라는 『시경(詩慶)』의 시를 외우며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고 이름 짓기를 청하였다(請名新宮曰景福)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이 탄 후 방치되었다가 1867(고종4)년에 중건되었으나 다시 일제에 의하여 건물 400여 칸이 철거되는 치명적인 훼손을 당하여 원형을 상실했다. 이후 경복궁 정면에 일제가 세운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면서 경복궁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강녕전, 자선당, 흥례문, 건청궁 등 여러 전각들이 복원되었다. .. 2023. 5. 6.
서촌 문학기행 작년에 가입한 독서 토론 모임 "동네북(BOOK)"에서 서울 서촌으로 문학기행(산책)을 다녀왔다. 나로서는 줌(ZOOM)으로만 만나던 회원들을 처음으로 직접 대면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안내는 시인 문기봉 님께서 해주셨고 5명의 회원이 함께 했다. 첫 방문지는 경복궁 서쪽 담장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보안여관"이었다. 입구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1936년에 지어진 목조 여관 건물인 통의동보안여관은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이 만들어진 곳으로 한국근대문학의 발상지이며, 2004년까지 실제 여관으로 많은 문화예술인이 머물렀던 생활유적이다. 『시인부락』은 1936년 서정주가 발행인겸 편집인을 맡고 오장환, 김광균, 함형수 등이 참가하여 창간한 시(詩) 동인지이다. 1937년 12월 통권 2호를.. 2023. 4. 29.
여인들만 '사는' 칠궁(七宮) 칠궁(七宮)은 경복궁 뒤쪽 청와대 가까이 있어 예전에는 사전 예약을 해야 방문이 가능했는데, 얼마 전 청와대에 들어오게 된 양반이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아무 때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은 곳이 되었다. 그런다고 그 양반에게 '덕분'이라는 표현은, 글쎄 ··· 별로 쓰고 싶지 않다. 경복궁역에서 나와 칠궁에 다다르기 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가 있다. 2016년 늦가을에서 2017년 봄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자주 왔던 곳이다. 낯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모여 청와대 쪽을 향해 "방 빼!"라고 외치곤 했다. 그 기억이 생생한데 세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 씁쓸하다. 칠궁은 조선시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追尊)된 이들을 낳은 생모이면서 왕비가 아니었던 후궁 일곱 분의 사당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일.. 2023. 4. 4.
성북동 나들이 한성대입구역 근처 "국시집"은 칼국수로 유명한 식당이다.. 성북동이나 대학로를 나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리는, 30년 이상된 우리 가족의 단골집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구수한 칼국수 맛이 한결같다. 아내와 나는 처음엔 나온 그대로의 슴슴한 맛을 즐기다가 반쯤 먹고 나면 파와 고춧가루를 다진 양념을 넣어 두 가지 맛으로 먹는다. 이번엔 오래간만이라 작은 수육 한 접시도 더했다. 역시 변함없는 맛이었다. 칼국수와 수육 이외에는 대구전과 문어숙회가 메뉴의 전부였는데, 뜬금없이 LA갈비가 메뉴에 올라있다. 선주후면(先酒後麵)에는 기왕의 안주만으로 충분해 보이는데 코로나를 지나면서 자구책으로 메뉴의 다변화를 꾀한 것일까?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와 나로서는 칼국수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노포의 변화.. 2023. 3. 26.
겸재(謙齊) 정선(鄭敾)의 그림 넷 일주일에 한 번 칼림바를 배우러 다니게 된 노노스쿨은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가까이 있다. 마침 근처에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겸재정선미술관"이 있어 칼림바 첫 수업을 마치고 가보았다. 내가 갔을 때는 내부공사로 2층은 문을 닫아서 1층과 3층만 볼 수 있었다. 3월 16일 이후 재개관을 할 때 아내와 다시 한번 방문할 생각을 하면서 둘러보았다. 미술관으로 들어가기 전 화단 한쪽에 금빛 마네킹이 있다. 겸재의 그림 「독서여가(讀書與暇)」에서 따온 형상이다. 겸재의 나이 60대 후반에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독서여가(讀書與暇)」 - 한 손에 부채를 들고 툇마루에 비스듬하게 앉아 화분에 핀 모란꽃을 감상하는 자세가 한가롭고 여유롭다. 뒤쪽으로 보이는 책장에는 빼곡한 책들이 단정하다. 65세(1.. 2023. 3. 23.
도다리쑥국 먹고 덕수궁 가기 봄동이 끝나갈 무렵 도다리쑥국을 먹는다. 봄동은 집에서 국도 끓이고 데쳐서 나물도 무치고 겉절이도 만들어 먹지만 도다리쑥국은 을지로입구 충무집에서 사 먹는다. 물냉면처럼 은근한 맛의 음식엔 아직 나의 솜씨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년 봄엔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한다. 도다리쑥국은 남해안 - 통영(충무), 고성 거제 일대 -의 토속 음식이라고 한다. 제철인 봄을 맞아 살아 통통이 오른 도다리 토막과 바닷바람을 맞고 돋아난 햇쑥을 옅은 농도로 된장을 푼 육수에 넣고 끓여내는 도다리쑥국은 별 기교가 없는 단순하고 소박한 맛이다. 아내와 나는 첫술을 뜰 때 입안에 감기는 그윽함에 종종 눈을 한번 감곤 한다. - 이곳 나의 글, "도다리쑥국을 먹어야 봄이다 " 중에서 - 늘 그래왔듯 멍게비빔밥을 곁들여 먹고 가까운 .. 2023.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