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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435

전시회 "미키마우스 Now and Future" 손자 1호가 집에 와서 하루를 잤다. 손님맞이를 위해 청소를 하고 먹을거리와 잠자리 준비를 하는 시간은 즐겁다. 어릴 때부터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아 손자의 속마음과 취향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예측은 자주 빗나간다. 손자가 크면서 모르는 것이 늘어난다. 한때 공룡을 좋아했으니 당연히 애니메이션 를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는 데, 손자는 10여 분만에 고개를 젓고 를 선택했다. 의 화려한 색깔과 마술의 내용이 관심을 끌었을까? 이야기 전개와 의미가 애니메이션 영화치곤 아이들에게 그다지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은 것 같은 데도 손자는 킬킬거리며 몰입해서 보았다. 음식 취향은 아내와 내가 비교적 잘 알고 있다. 손자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내가 만든 삼계탕이다. 아내가 만든 '소갈비찜'에 밀리지 않을.. 2023. 2. 28.
아차산숲속도서관 아내와 함께 평소 보다 좀 먼 "아차산숲속도서관"까지 걷기로 했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잔잔했다. 완고하게 보이던 호수의 얼음은 어느덧 풀려 사라지고 없었다. 조금은 쌀쌀한 듯했지만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어린이 대공원을 지나 아차산으로 향했다. 나무 끝에 물기가 아주 연하게 차올라 희미하게 연둣빛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아차산숲속도서관은 작년 10월에 개관한, 아차산 생태공원 옆, 이름대로 숲 속에 있었다. 지상 2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에는 일반·아동도서 약 5000여 권이 있는 자료실이, 2층에는 신문과 잡지들이 있는, 아담하고 예쁜 도서관이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아내와 나는 2층 열람실에 자리를 잡았다. 여행 잡지를 골라, 세부적인 기사보다는 사진 위주로 아내와 돌려.. 2023. 2. 20.
겨울숲과 봄똥 2월. 아직 겨울은 끝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봄기운도 쉽게 느껴지지 않는 애매한 달이다. 그래도 요며칠은 날이 푸근해서 아내와 오래간만에 서울숲을 걸을 수 있었다. 짙은 갈색의 나무들은 지난 가을에 잎을 떨군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있었다. 겨울숲이 주는 차분한 침잠(沈潛)과 깊은 적요로움이 감미롭게 다가왔다. 화사한 봄과, 싱싱하고 무성한 여름과, 명징하고 화려한 가을이 쌓여 숙성이 되면 그런 겨울숲의 풍요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가끔씩 눈과 얼음이 녹아 말랑말랑한 땅을 만났다. 굳이 피해가며 걷고 싶지 않았다. 앞서간 다른 사람들도 그랬는지 흙에는 여러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내와 하굣길 신발 밑창에 달라붙은 진흙을 나뭇가지로 떼어내던 어린 시절을 기억해내기도 했다. 봄똥은 겨울이 가기 전에, 혹은 겨울을.. 2023. 2. 13.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2 딸아이네와 지난 연말에 갔던 가평 소재 아난티코드에 다시 다녀왔다. 그곳에서 내가 시간을 보내는 일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손자'친구'들과 놀면 되니 단순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손자'저하'들의 다양한 취향을 맞추려니 복잡하다. 더군다나 어린 두 '저하'들의 나이차를 극복할 수 있는 공통의 놀이를 찾는 것과 각각의 전하에게 적절한 시간배분을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종종 '할아버지 쟁탈전'이라고 좋을 상황이 생겨난다.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 손자친구·저하들의 성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제나 1미터 이내의 거리유지가 필수다. 텔레토비와 띠띠뽀 덕분에 잠시 커피 마실 짬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아내는 다음부턴 나와 손자 둘만을 위한 방을 따로 얻어야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의 결론이 결국 '.. 2023. 1. 31.
경희궁 예나 지금이나 궁궐은 다른 도시와 가장 크게 구별되는 서울만의 역사이자 특징이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서울에 살면서 여러 차례 궁궐을 다녀왔다. 그때그때 이런저런 건물의 배치와 역할 따위를 책과 안내판을 통해 알아보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공원을 걷는 것과 같은 산책의 개념이었다. 정작 건물의 이름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진 않았다. 올해는 아내와 서울 시내 궁궐을 돌며 현판과 기둥에 붙은 주련(柱聯)을 알아볼 계획을 세웠다. 문화재청이 발행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은 "궁궐은 조선조 문화의 절대적 공간이었다. 그래서 궁궐 건물의 공간 구조와 각 건물의 역할과 명칭에는 유교적 세계관과 도덕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유교 이념의 기초가 보편적 이성인 천명에 기초한 덕치주의, 음양오행에 기초한 자연관, .. 2023. 1. 22.
그 교회가 정말 거기 있었을까? 얼마 전 아내와 광화문 지하철역 근처를 걷다가 깜짝 놀랐다. "뭐야? 이게 새문안교회?" 그 자리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낡은 교회는 사라지고 대신에 휴대폰 카메라로는 다 담을 수 없을 크기의 미끈한 현대식 건물이 보도에 바투 붙어 서 있었다. 갑자기 전혀 낯선 공간에 들어온 것 같아 어리둥절했다. 박완서의 소설 제목을 빌려오자면 예전의 '그 교회가 정말 거기 있었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2014년 7월에 옛 건물의 철거를 시작하여 5년 만인 2019년 2월에 새 건물을 완공하였다고 한다. 대학생 때 친구를 따라 이곳 학생들 모임에 잠깐 나갔던 적이 있다. 기독교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거침없이 활달하면서도 따뜻한 '젊은 예수', 기꺼이 고난에 다가서던 그의 삶에 관심이.. 2023. 1. 19.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잭 니콜슨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원제는 "As good As It gets"다. 이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도 약간의 부정적인 의미로도 쓸 수 있다. 더 좋을 수 없으니 최고라는 의미도 되고, 별로 좋지는 않지만 지금으로선 이 정도가 최고라는 뜻도 된다. 손자친구들과 만남은 언제나 앞선 의미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이다. 딸아이네와 경기도 가평에 있는 "아난티 코드(ANANTI CHORD)"를 다녀왔다. 손자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오목을 두고 보드게임을 했다. 키즈룸에서 거북선을 조립하고 그림을 그렸다. 함성을 지르며 거침없이 질주하는 친구의 킥보드를 숨 가쁘게 쫓아다니기도 했다. 지극히 평범한 시간의 조각들이 특별한 기억의 모자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아내와 제주여.. 2022. 11. 30.
제주 함덕 31(끝) 어제 오드랑 빵집에서 남겨온 빵으로 아침을 하고, 청소를, 짐 정리를, 숙소 주인과 작별을 했다. 다시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았다. 늘 같은 곳에서 바라보아도 보이는 모습은 그때그때 다르다. 오늘은 선명한 외곽선이 드러나 있지만 구름에 가려 아예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선명하건 흐리건 그 모든 모습의 총체가 한라산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생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그런 것처럼 . "한라산아 안녕! 한 달 동안 늘 창밖에 있어주어서 고마워!" 제주도에 올 때 공항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던 아내의 친구 부부가 고맙게도 다시 숙소에서 공항까지 차로 태워 주었다. 그들은 앞으로 2개월 이상을 더 제주에 머무를 예정이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부러운 한편으로 집으로 가는.. 2022. 11. 18.
제주 함덕 30 최규석의 『송곳』은 제주에서 읽은 마지막 만화다. 프랑스계 대형마트 푸르미에서 벌어지는 노동운동에 대해 그렸다. 부당해고에 맞선 직원들의 노조 결성과 저항, -그러나 그 저항은 생경한 구호나 격렬한 투쟁으로 그려져 있지 않다. 누군가의 거룩한 희생도 없다. 다만 '시시한 약자'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짐을 진 채 갈등하고 고민하며 '시시한 강자'들에 맞서 행동한다. 그 디테일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회사의 편도 노조의 편도 아닌 곳에 나의 자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자리를 결정할 권리는 나에게 없었다. 만화 속 한 중간관리자의 고백이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급증하던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나에게 실감 나게 다가왔다. 그때 내가 어떤 위치를 선택할 수 있다고.. 2022.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