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갖가지 행사와 방송의 특집 프로그램이 유난하다.
김광섭의 시와 글로 잠시나마 그 고난의 시기를 생각해 본다.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 김광섭은
"1941년 2월21일 이른 아침 한인(韓人) 형사들에게 온 집안을 수색당하며 끌여나온 후"
제자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는 죄목으로 구속된다.
나는 2223번 / 죄인의 옷을 걸치고 / 가슴에 패를 차고 / 이름 높은 서대문 형무소/
제3동 62호실 / 북편 독방에 홀로 앉아/ 「네가 광섭이냐」고 / 혼잣말로 물어보았다
3년하고도 8개월 / 1300여 일 / 그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 나는 시간을 헤이고 손꼽으면서 /
똥통과 세수 대야와 걸레 / 젓가락과 양재기로 더불어 / 추기 나는 어두운 방 / 널판 위에서 살아왔다
여름이 길고 날이 무더우면 / 나는 바다를 부르고 산을 그리며 / 파김치같이 추근한 마음/
지치고 울분한 한숨에 / 불을 지르고 나도 타고 싶었다
겨울 긴긴 밤 추위에 몰려 / 등이 시리고 허리가 꼬부라지면 /
나는 슬픔보다도 주림 보다도/ 뒷머리칼이 하나씩 하나씩 / 서리같이 세어짐을 느꼈다
나는 지금 광섭이로 살고 있으나 / 나는 지금 잃은 것도 모르고 /
나는 지금 얻은 것도 모르고 살 뿐이다
그러나 푸른 하늘 아래로 거닐다가도 / 아지 못할 어둠이 문득 달려들어 /
내게는 이보다도 더 암담한 일은 없다
그리하여 어느 덧 눈시울이 추근해지면 / 어데서 오는 눈물인지는 몰라도 /
나의 눈물은 이제 드디어 / 사랑보다도 운명에 속하게 되었다
인권이 유린되고 자유가 처벌된 / 이 어둠의 보상으로
일본아 너는 물러갔느냐 / 나는 너의 나라를 주어도 싫다
- 김광섭의 시, 「벌」-
김광섭은 그 시기 옥중에서도 일기를 썼다.
비록 표현의 자유 역시 구속된 상황에서 기록된 것이긴 하지만.
기상 나팔소리! 오늘이 토요일이다. 옥중이라 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자. 한 주일이 가기는 가는구나!
옥중세월인들 다르랴. 누가 붙잡아 맬 건가.
큰 집 지어서 한번도 열어 보지 못한 - 또 열게 돼먹지도 않은 캄캄한 창에서부터 두 폭으로 축 처진
검은 카텐을 양쪽으로 제쳐 놓다. 금계산(金鷄山) 꼭대기에 지지 못한 달이 창연(蒼然)히 보인다.
북창에 처음 보는 달이다. 꿈에 따라가다 어디선가 자는데 누가 문에 쇠를 잠그고 갔구나!
한숨이 나서 더 바라볼 수 없다. 이 토요일 아침 밖에서는 어떨까.
낮은 평일처럼 가고 밤에는 수의(囚衣)를 걸치고 팔장을 꼈지만 아랫도리는 허망이다.
콧등과 발가락이 벌써 시리다. 이 겨울을 어떻게 갈망하고 넘나? 같은 살인데 왜 얼굴보다 더 시릴까.
이 붉은 옷하고는 언제나 친해질까.
자꾸 창백해지는 얼굴도 부은 것 같다.
벽도 죄스러운지 진땀이 흐른다.
운명의 이불이나마 덮고 온감(溫感)이야 있건 없건 포근히 잠들고 싶다.
성령이 있으면 오늘밤에야 이 몸에 악몽이 안 오겠지.
팔다리를 뻗다가 하마터면 큰 소릴 지를 뻔했다. 손에 닿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무슨 손길이나 한번 쥐어주지!
아, 자자, 거침없이 떨어진 자처럼...... 낮은 베개 높이 베고......
- 1943년 11월13일 -
일기의 이 부분은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시절의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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