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30 - 권태응의「감자꽃」

by 장돌뱅이. 2015. 7. 7.

 

 




취미로 밭농사를 짓는 친구가 감자를 캐러오라는 연락을 주었다.
농사라고는 지어본적이 없는 경아리인 나에게도 "하지감자"라는
말이 익숙하니
바야흐로 지금이 감자 수확철이겠다.

다른 친구 한명과 함께 부부 동반을 하여 친구의 '농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농장'은 크기가 아니라 자그마한 밭에 심어진 다양한 품종을 빗대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다.
친구는 밭을 세분하여 이랑마다 여러가지 작물을 키우고 있다.
감자와 고구마, 토마토와 옥수수, 들깨와 콩, 호박과 오이, 상추와 고추, 그리고 치커리(비슷한 것?) 등등.

남자들은 감자를 캐고 여자들은 상추 등의 푸성귀를 뜯기로 했다.
감자밭을 향해 막바로 돌진하려는(?) 나의 무지와 투지를 진정시키며
친구는 감자 수확의 순서와 요령을 알려주었다.
먼저 감잣대를 뽑고 두둑을 덮은 검은 비닐을 들어낸 다음,
호미로 감자가 상하지 않게 조심해서 흙을 헤쳐가며 캐라는 것이었다.

막상 해보니 세상에 신나는 일 중의 하나가 감자 캐는 일 같았다.
감잣대만 들어올리는 데도 감자들이 주렁주렁 달려나오는데다가
흙이 부드러워 구태여 호미를 쓸 필요도 없이 손으로만 헤쳐도
주먹만한 놈들이 흐믓하게 쏟아져나왔다.

봄부터 여름까지 씨감자를 심고 북을 돋우며 가꾸어온 노동이
생략된 
결실만의 수확은 오락도 그런 오락이 없었다.
작은 두 고랑을 헤쳤을 뿐인데도 담아갈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감자가 모아졌다.
한 시간 남짓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밭일인데 새참은 있어야지 않겠냐고 
밭가에서 막걸리 잔을 돌리니 살짝 취기가 올랐다.
그 때문인지 나도 내년엔 농사 한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여기저기 주변에 감자를 나누어주었다. 
그런데도 아내와 나, 두 식구가 먹기에는 여전히 많은 양의 감자가 남았다.
남은 감자를 신문지 위에 늘어놓고 흙을 말린 후 사과 한 알을 넣은 박스에 담아 그늘에 보관하는 중이다.
다행히 아내는 감자를 좋아한다.
당분간 감자채볶음과 감자국, 감자조림 등을 매일 밥상 위에 올려야겠다.

감자에 관한 문학 작품 - 우선 김동인의 소설「감자」가 생각난다.
가난에 내몰린 주인공 복녀의 슬픈 이야기.
인간이 만든 세상은 자주 그런 모습이다.
복잡하고 흐릿하고 추접하고 틀어지고 깨지고......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을 읽으면 단순, 명료, 깨끗, 상큼의  실체가 보이는 것 같다.
자연의 심성이 그렇지 않던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자연보호'는 인간의 오만이 만든 표현일 수 있다.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귀의(歸依)해야 할 진리이기 때문이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