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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

여행에 대한 잡담 2. - 소심한 사람의 여행

by 장돌뱅이. 2005. 2. 18.

 
내가 아주 어릴 적 큰누나는 가끔씩 나를 업고 어를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애기는 이다음에 커서 비행기를 많이 타고 다니는 훌륭한 사람이 돼라.”

비행기를 타는 것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전혀 등식이 성립될 수 없는 관계지만 50년대 말 한국 사회에서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소녀가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성공의 상징은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큰누나의 기원 덕분인지 나는 보통 사람들의 평균치보다는 비행기를 많이 타고 다니는 장돌뱅이가 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고 훌륭함은 더더욱 아득하다.
그래서 나는 큰누나를 볼 때마다 불평을 해댄다.
마치 오늘의 나의 경제적 무능력이 누나의 잘못된 기원 때문인 것처럼.

“기왕지사 비나리를 할 것이면 이다음에 말죽거리 부근에 빌딩 좀 많이 짓고
살거라 하는 식으로 할 것이지 비행기 많이 타는 사람이 뭐야 도대체가......”

무엇이건 첫 경험은 누구든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비행기를 탈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된 내가 처음 해외여행을 한 곳은 인도네시아였다.
첫 해외여행의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와 흥분 속에는 종종 그와 동일한 크기의 불안감이 배어있기 마련이다.
내색하지는 않았어도 나 역시 그랬다.


원래 대범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 데 있어 별도의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용기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의지만으로 어떤 일을 당당하게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처럼 소심하고 대범하지 못한 사람이 동일한 과정을
겪는 데는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하다.

동료들이 베풀어준 송별회 자리에서 ‘그래! 난 열대의 정글로 간다’고 농담을 하며 웃었지만,
실제 마음속에는 자카르타가 밀림 속의 마을처럼 상상이 되기도 했다.

단기간의 출장이 아니라 첫 해외 경험이 가족을 동반한 장기 근무라는 데서 불안한 상상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비행기 안에 들어섰을 때는 국내선과는 비교도 안되는 커다란 비행기가 사람을
가득 싣고 하늘을 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운 베르누이 정리인가 양력인가로는 도대체 이 거대한 쇳덩이가 하늘로 날 것 같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이제 좀 익숙해지고서야 나는 비행기는 하늘을 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어떨 때는 비행기가 이륙을 하기도 전부터 편안한 잠에 빠지곤 한다.

딸아이까지 포함하여 가족 단위로 여행을 해온 내게 대부분의 여행지는 안전이 ‘검증’되고 ‘확인’ 된 곳이다.
내게 있어 세상은 그렇게 ‘검증’되고 ‘확인’된 곳으로 ‘안전빵’의 여행만을 하기에도 너무 넓다.
그리고 그런 평범하고 흔한 지역으로의 여행도 소심한 내겐 충분히 모험적이다.


얼마 전 터어키 이스탄불의 식당에서 우연히 한 사내를 만났다.
아마 그와 같은 사람을 인도네시아에서, 아니면 중국이나 러시아의 어느 역이나 항구에서도 보았던 것 같다.
건강한 구릿빛 얼굴, 단출한 복장, 뭔가 여행에 필요한 진액만 요약하여 꾸렸을 것 같은
야무진 배낭 등등에서 그가 만만치 않은 여행 경력의 소유자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하고 나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위험할 ‘뻔’ 했던 여러 번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런 이야기는 대개 그렇듯 오 분만 어떤 곳을 일찍 떠났거나 일찍 돌아갔다면,
한 발자국만 먼저 내디뎠거나 물러섰다면, 아니면 앞 차를 탔거나 뒷 좌석에 앉았다면,
발생될 수 있었다는 식의 우연한 불행과 다행을 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위험한 곳을 여행하느냐고 묻자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은 재미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을 하며 인생이란 어차피 여행이며 모험이라고 마치 뭔가 달관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휴양지로서의 푸껫이나 발리 등을 이야기하자
그는 그런 곳은 이다음에 나이 들어서도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냐며 가볍게 일축해 버렸다.
일천한 나의 여행 경력을 말하고 나서부터 둘 사이 대화의 주도권은 그의 다양한 여행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멀고 먼 나라의 이름도 낯선 오지에서의 숱한 고생담과
특이한 경험은 마치 어릴 적 김찬삼 여행기 속의 사진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는 밤새워 들어도 끝나지 않을 20여 년의 풍부한 여행 경력을 가진 듯 지만
나는 그가 어떤 일간지에 기고했다는 여행기를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굳이 찾아 읽어 보고 싶지 않았다.

소심한 나이기에 그가 겪은 고난스러운 여정을 따라 해 볼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남의 글을 읽음으로써 상상 속의 여행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니까.
다만 자신의 여행 경력에 대한 다소 터무니없는 그의 오만함과 과시를 통해
그가 여행이 아니라 ‘여행경력’을 더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큰누나의 바람처럼 자주 비행기를 타고 물건을 팔러 다니는 장돌뱅이는
되었지만 성공이라거나 훌륭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산악인은 에베레스트와 북한산 등정의 우열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어디를 오르건 등산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동일하지
산의 높고 낮음에 따라 그 가치가 우열로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고난과 역경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한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듯이 고난스러운 오지로의 여행만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달나라와 화성을 가는 시대에 지구 상에 사람이 갈 수 없는 오지란
이제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이제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은 남들이 이미 가본
곳을 갈 수밖에 없다.

여행은 자유라고 말할 때 그 자유는 우리의 영혼의 자유를 근거로 한다.
영혼은 저마다의 마음속 비밀스러운 오지에 숨어 있는 보석이다.
여유롭고 자유로운 휴식의 여행은 그런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휴식(休息)이라는 단어 속의 식(息) 자는 스스로(自)를 마음(心) 위에 두고 있지 않은가.

“휴식은 자신에게 선사하는 따뜻한 시간이다. 자신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어떻게 더 나아지겠는가? 휴식이 게으름이나 소비로  느껴지지 않을 때,
한 사회가 진심으로 이에 공감할 때, 우리는 훨씬 나아진 사회에 살게 된다.”

구본형의 글에 나는 언제나 공감한다.

*2002년쯤에 쓴 글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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