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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중국26

2017 '손자 친구'와 함께 한 마카오3(끝) 마카오에서 내가 이제까지 여행하는 중에 가장 크고 럭셔리한 방을 경험해 보았다. 애초에 체크인 시 호텔 측에서 고맙게도 방을 업그레이드 하여 쥬니어스위트는 됨직한 방을 주었다. 거실이 넓고 이런저런 수납 공간이 많은, 단기 여행자에겐 아까울 정도로 여유로우면서도 오붓한 느낌도 있는 방이었다. 우리는 매우 만족했다. 이튿날 아침에 책을 읽던 아내가 흰 침대 시트 위를 기어가는 작은 벌레를 발견했다. 휴지로 잡고 보니 바퀴벌레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나는 그 벌레는 흰 메모지 위에 놓고 "우연히 침대에서 이 벌레를 발견했다. 바퀴벌레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바퀴벌레라면 이미 여러 마리가 산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 청소할 때 잘 체크해 주기 바란다." 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날 오후 수영장에서 손자와 놀고 .. 2017. 10. 14.
2017 '손자 친구'와 함께 한 마카오2 손자 친구가 급작스런 고열로 식구들 모두의 혼을 빼놓은 여행이었지만 '폭풍의 시간'이 지나자 몸은 먹을 것을 요구해 왔다. 기억에 남는 마카오에서 먹은 것 두 가지. 1. LORD STOW'S BAKERY & CAFE 손자 친구와 단 둘이서 아침 산책을 하다가 베네시안 호텔에서 발견한 곳. 가게 문이 열기도 전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곳의 에그타르트(EGG TART,蛋挞)) 가 유명하다고 여행 전 인터넷과 책에서 본 것이 생각났다. 힙시트 속에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용을 쓰는 친구를 달래가며 줄을 서서 포장을 해다가 식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단맛이 강한 카스타드 크림의 케익. 맛 보다는 마카오 명물이라는 명성으로 기억. 2. WING LEI PALACE 마카오에는 WYNN 호텔이 두 곳에 있다. .. 2017. 10. 12.
2017 '손자 친구'와 함께 한 마카오1 "당신······, 당신이란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허수경의 시 「혼자 가는 먼 집」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손자 친구'가 태어나면서 이 시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당신' 대신 '녀석'이나 '이놈' 혹은 '고놈' 단어를 넣으며 '킥킥거린다.' "녀석이 말이야······." "야 이놈아······." "고놈 참······." 그럴 때마다 '친구'도 뭐 그리 싫어하는 표정이 아니다. 싫어하긴커녕 어떨 땐 그 의미를 이해한다는 듯이 얼굴을 살갑게 부빌 때도 있다. 아내는 "이럴 때 보면 어린애라고 그 앞에서 함부로 말해선 안 되겠다"고 놀라곤 한다. 8월에 마카오를 다녀왔다. 원래는 국내에서 수영장 좋은 호텔을 잡고 느긋하게 쉬려고 했으나 "부산140만원 vs 세부 129만원, 호.. 2017. 10. 6.
지난 여행기 - 1999북경(끝) 25. 조선족에 대하여 북경의 마지막 밤,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한국대 중국의 축구경기가 있었다. 북경에서 경기가 있었다면 당연히 운동장으로 갔겠지만 이 날의 시합은 상해에서 열렸다. 우리는 맥주를 준비해놓고 TV 앞에 앉았다. 그리고 침대가 들썩이도록 응원을 했다. 결과는 우리 팀의 통쾌한 승리였다. 오래 전 중국 현지 공장의 조선족에게 한국과 중국의 운동경기가 있으면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는 우문을 던진 적이 있다. 평소 매우 궁금했던 것이다. 그 때 그는 '당연히 중국팀'이라고 대답했다. 왜?라고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는 그런 질문은 우습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중국사람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맞는 말이다. 그들은 한국말, 아니 조선말을 하는 중국인인 것이다. 그들은 .. 2017. 9. 5.
지난 여행기 - 1999북경12 22. 벽운사 (碧雲寺) 벽운사(보윈쓰)는 1925년 죽은 손문(孫文)의 유해가 남경(南京)으로 옮겨지기까지 2년간 머문 곳이다. 지금도 전당의 중앙 홀에는 손문 상반신 상과 소련에서 보내온 수정관이 전시되어 있다. 이 관은 손문의 유해가 입관이 끝난 후에 도착하여 사용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킨 손문은 대만에서도 중국에서도 모두 존경받는 인물이다. 손문의 부인인 송경령이 살던 집은 자금성 옆에 있으며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중국 근대사의 격변기를 살아간 송씨 집안의 세 자매의 삶은 자못 드라마틱하다. 첫째 애령은 중국 중앙 은행 총재와 결혼하였고, 둘째 경령은 중국의 국부 손문의 아내가 되었으며, 셋째 미령은 장개석의 후처가 되었다. 흔히들 애령은 부을 사랑하였고, 미령은 권력.. 2017. 9. 5.
지난 여행기 - 1999북경11 20. 폐허의 원명원 (圓明园) 이른 아침 우리는 남쪽 문을 통해 원명원(위안밍위안)으로 들어갔다. 문안에 들어서니 이제껏 우리가 북경의 황실 유적에서 보았던 금빛 기와의 거대한 건물 대신에 잡초 사이로 난 소롯길이 낮은 언덕을 돌아 넘어가고 있었다. 몇몇 노인이 낚시대를 드리운 호수에는 파란 하늘이 시린 모습으로 잠겨 있었고 길가의 잡초는 벌써 노랗게 퇴색한 모습으로 늦가을의 여린 햇살 아래 한가로웠다. 가끔씩 자전거를 탄 사람이 옆을 지나갈 뿐인 싫지 않은 조용함 속을 우리는 걸어갔다. 한 때 번성했으나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린 어떤 곳에 가면 누구나 조금쯤은 감상적이 된다. 퇴락한 빈집이나 운동장에 가득 잡초가 돋아난 시골 폐교의 깨진 유리창, 아니면 답사 여행때 만나게 되는 텅 빈 폐사지 - 금빛.. 2017. 9. 4.
지난 여행기 - 1999북경10 18. 명십삼릉과 '의리'의 조선 단체 여행을 하건 개인 여행을 하건 북경을 찾는 여행객은 만리장성과 明十三陵(밍스산링)을 함께 묶어 돌아보게 된다. 두 곳 다 북경에서 북서쪽으로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명십삼릉은 명나라 13명의 황제와 황후 등이 묻혀 있는 곳이다. 능으로 가는 길과 능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한데 옛날부터 경작과 나무 베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제의 능은 황실의 어떤 기준에 의하여 모두 동일한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황제가 살아 있을 때 미리 만들었는가 죽은 후에 만들었는가에 따라 그 규모와 내용에 큰 차이가 있다. 당연히 황제 생전에 미리 만든 것이 더 크고 화려하다. 현재는 3개의 능만을 개방하고 있는데 여행객들은 흔히 지하궁전인 정릉(定陵)을 찾게된다.. 2017. 9. 3.
지난 여행기 - 1999북경9 16. 용경협(龍慶峽)엔 잘못이 없다 우리 가족은 용경협(룽칭사)을 가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하여 잠시 고민하였다. 여행 안내 책자나 여행기에는 대부분 이 곳의 풍광에 대하여 '작은 계림'이란 말로 찬사를 늘어 놓았다. 우리는 만리장성과 명13릉 관람을 빼고는 북경 시내 관광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엔 가고 말았다. 그리고 실망하고 말았다. 가기로 한 것은 나의 욕심 때문이었고 실망을 한 것은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온이 뚝 떨어져 있었다. 매우 쌀쌀한 날씨였다. 호텔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공원의 나무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크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겨울용 잠바를 준비해 온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호텔 앞에 주차되어 있는 택시와 용경협, 만리장성, 지하궁전.. 2017. 9. 2.
지난 여행기 - 1999북경8 14. 방선반장(倣膳飯莊) 우리는 고궁을 나와 택시로 가까이 있는 북해공원(北海公園 베이하이 꽁위엔)으로 갔다. 고궁의 서북쪽에 위치한 이 공원은 요나라 때 설립되어 역사가 9백년이나 된다고 한다. 역대 왕조의 어원(御苑)이었는데 지금은 북경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로 변하였다. 공원에는 북해(北海)라는 유명한 호수가 있으며, 호수중앙에는 인공섬인 경도(瓊島)가 있다. 이 공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라마교식 거대한 백탑(白塔)이 경도 정상에 있다. 우리는 남문에서 하차하여 영안교를 건너 경도로 들어갔다. 먼저 배를 채운 후 나오는 길에 백탑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 곳에는 황실요리를 내는 방선반장(팡산 판쥬앙)이 있기 때문이다. 청나라 말기에 절대적인 권력을 자랑했던 서태후의 식탁을 통해 황실음식을 살.. 2017.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