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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1

세월호연장전 4월11일에 세월호 연장전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4월16일이다. 그것이 연장전(延長展)이건 혹은 연장전(延長戰)이건 아니면 연장전(鍊匠展)이건 또는 연장전(鍊匠戰)이건 필요한 시간이다. 고혼(孤魂)들 어디를 떠돌고 있는지 천길 바닷속, 어느 슬픈 심연을 떠돌고 있는지 어느 봄 어느 가을 한 줄기 햇살 되어 모질고 고통스런 이 땅에 다시 오려는지 온 영혼을 쥐어짜보아도 모든 언어가 부질없다 적당히 그럴듯한 말로 가장 추한 것을 감추고 보상이니 추모니 피 냄새 나는 지폐로 생명을 계산하는 동안 부정한 힘과 제도와 미친 속도는 여전하고 배 가라앉을 때 함께 가라앉은 진실도 양심도 망망대해 떠내려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존엄은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보느냐에 있고 한 나라의 통치는 사람의 .. 2015. 4. 16.
봄바람 지금은 봄꽃이 거의 절정이지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봄은 아직 꽃몽오리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날씨는 화창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 날 집안에 있는 것은 죄악'이라고 아내를 부추켜 강변길로 나섰다. 터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아파트 화단의 백목련과 산수유. 물오른 강변의 버드나무. 잔물결에 일렁이는 햇볕에까지 봄은 어느 샌가 세상에 봄 아닌 것이 없도록 은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친구 부부들과 모임을 갖고 창경궁과 창덕궁을 걸었다. 거기서도 옛 왕궁의 근엄함을 다독이는 봄기운에 취해야 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은근한 노란색의 산수유.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이웃집 점순이가 "뭣에 떠다 밀렸는지" 주인공의 어깨를 짚고 그대로 함께 픽 쓰러지며 파묻히던 알싸한 향내의 노란 동백꽃 속, 그.. 2015. 4. 3.
발밤발밤2 -구례, 늦가을(끝) 아침에 일어나 숙소인 쌍산재를 산책했다. 쌍산재는 관리동 포함 7채가 들어선 한옥집이다. 현 운영자의 고조부 되시는 분의 호(쌍산)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대문에 들어서면 비탈이라 오밀조밀한 느낌이 들지만 계단길을 통해 대숲을 지나면 평지가 넉넉하게 펼쳐진다. 한옥이다 보니 아파트와 같은 완벽한 보온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겨울철의 약점을 제외하곤 묵어갈만 한 곳이었다. 쌍산재 대문 바로 옆에 "전국 최상의 물"이 나온다는 당물샘이 있다. 혹독한 가뭄이나 장마에도 늘 일정한 수량을 유지하는 당물샘의 물은 한 달 넘게 독에 담아 두어도 물때가 끼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 당물샘이 있는 상사 마을은 전국에서도 손 꼽히는 장수 마을이었다. 70객은 장년이고 환갑노인은 청년 취급을 받.. 2014. 12. 28.
발밤발밤2 -구례, 늦가을2 구례의 숙소는 쌍산재라는 한옥집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방문 창살이 선명하게 비친 하얀 창호지가 눈이 부셨다. 한옥이라 방바닥은 따뜻했으나 방안의 공기에서는 찬 기운이 느껴졌다. 잠에서 깨어서도 이불을 끌어당겨 어깨까지 덮고 한참을 뭉그적거리다 일어났다. 방에 딸린 간이 부엌에서 물을 끓여 작은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봉지 커피로 입가심까지 마치고 방문을 여니 이런! 뜻밖에 비가 추적이고 있었다. 아침에 섬진강변을 걸어볼 예정이었는데 낭패스러웠다. 쌍산재 주인에게서 우산을 빌리고 구례읍까지 나가는 택시를 부탁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일정을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야 했다. 우리를 데리러 온 택시 기사는 "좌충우돌 구례택시이야기(http://blog.naver.com/sswlim)" 라는 .. 2014. 12. 28.
발밤발밤2 - 구례, 늦가을1 목적지와 상관없이 기차여행은 내게 여행의 원형 같은 것이다. 어린 시절 버스나 전차를 타고 청량리나 동대문 쯤의 시내를 나가는 것이 특별한 나들이였다면 고속버스라는 것이 등장하기 전까지 기차는 그보다 먼, 잠을 자고 와야 하는 장거리 여행을 의미했다. 물론 그 시절엔 순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집안의 대소사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어른들을 따라가는 정도였지만. 기차에 올라 출발를 기다릴 때의 조바심에서부터 덜컹이며 다리를 건너거나 깜깜한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의 흥분은 지금의 그 어떤 놀이기구에서도 느낄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아내가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을 제안했다. 국내여행도 오래간만이지만 기차여행은 더 오래간만이었다. 부산이나 대구를 꼽아보다가 전라남도 구례를 택했다. 지리산과 섬진강 .. 2014. 12. 27.
카인의 시간 수백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6개월이 되었다. 이 날 유가족대책위는 "(그동안) 국가는 면죄부를 주기 바빴고, 우리의 의문에 누구 하나 나서 답해 주지 않았다. 이젠 잊힐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크다. 참사 전과 후가 달라질 거라고 했던 약속을 제발 기억해달라"고 호소했다. 나이 오십 넘게 이 땅에 살아오면서 이와 비슷한 경우와 마주친 몇 번의 기억이 있다. 그럴 때마다 늘 성경 창세기의 한 귀절을 떠올리게 된다. 주님이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우리가 이 참담한 경험을 이토록 쉽게 잊어도 .. 2014. 10. 17.
딸아이의 결혼 결혼식을 마친 딸아이가 신혼여행을 떠났다. 식을 마치고 집으로 와 덕담을 나누던 친척들마저 돌아간 뒤 아내와 둘이만 남게 되자 휑해진 거실에 남은 적막함이 유난히도 깊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피곤함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잠자리에 들고난 후 나는 밤이 깊도록 혼자 맥주를 마셨다. 뿌듯한 성취감과 허전한 낭패스러움이, 기쁘면서도 약간은 서글픈 감정이 번갈아가며 다가왔다. 지난 두달 가까이, 정확히 말하자면 딸아이의 짐을 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잘못 길들여진 '불독처럼(딸아이의 표현)' 짜증을 달고 살았다. 사소한 일에도 울컥울컥 화를 내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잘 제어가 되지 않았다. 평소 불뚝 성질을 부리면서도 오분만 지나면 이내 풀어졌던 것과는 달리 지난 두달간은 뒤끝마저 길게 끌고 다녔다. .. 2014. 9. 23.
샌디에고 출장 잠시 샌디에고엘 다녀왔다. 지난번 귀국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7년을 살아 익숙한 곳이지만 앞으로는 갈 확율이 거의 없는 곳이라 아내도 동행을 했다. 일 틈틈이 샌디에고의 이웃들을 만나고 기억에 남는 곳을 골라 다녀 보았다. 신형 기종 A380의 이착륙은 부드러웠다. 엘에이 공항에 착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위 사진은 모니터에서 촬영한 것이다. 푸른 하늘, 투명한 공기와 맑은 햇빛, 끈적임 없이 피부를 뽀송뽀송하게 유지해주는 습도, 서늘한 바람 - 샌디에고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고 진부할 정도로 흔한 것들이지만 그런 것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언제나 새롭고 감동스럽다. 특히 오래간만에 한국에서의 후텁지근한 날씨를 경험한 뒤라 감동의 강도는 더욱 컸다. 활동 반경을 고려해 라호야 L.. 2014. 7. 30.
딸아이의 새로운 이름 딸아이가 세례를 받고 천주교인이 되었다. 작년 연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스스로의 다짐을 실천한 것이다. 여러가지 일에 활동적인 딸아이가 6개월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일요일의 교리수업에 참석하였다는 것이 나로서는 또한 놀랍다. 정작 본인은 간단히 즐거웠다는 말로 대신한다. 미카엘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새로운 이름......무릇 이름은 모든 존재의 정체성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불교의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여러 이름의 강이 있으나 그 강들이 바다에 이르고 나면 그 전의 이름은 모두 없어지고 오직 바다라고만 일컬어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귀족, 정치가, 군인, 노동자, 농민, 천민 등 모든 계급도 일단 법과 율을 따라 발심하고 나면 예전의 계급대신 오직 중(衆)이라 불린다... 2014.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