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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1

집 안팎에서 며칠 전 휴일 저녁 나절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아! 저 하늘 좀 봐!" 그 소리에 놀라 하던 일을 멈추고 아내가 바라보는 창밖을 바라보던 나도 덩달아 신음처럼 "아!..." 하는 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오, 아름다운 노을 저 노을을 볼 때 우리는 이 세상 어떻게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 신동엽의 시 중에서- 언젠가 퇴근길 아파트 정문을 들어서던 나는 동쪽 하늘을 밝히며 떠오르는 달의 모습에 같은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멈춘 적도 있었다. 어디 그런 화려한 하늘뿐인가. 구름 한 점 없는 청정한 하늘에 푸른빛을 더하고 스러지는 저녁해의 담백함도 아내와 나를 매혹시키곤 했다. 터무니 없는 논리와 주장과 이념들이 우리가 사는 거리와 골목을 흔들며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우리가 아직 그런 .. 2013. 6. 21.
지난 국토여행기 4 - K형, 평화의 댐을 다녀왔습니다 2005년의 여행기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요즈음 저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의 기간이어서인지 부정한 독재 정권을 이겨내고 이루어낸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코 '10년'만으론 이룰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의 해묵은 구태 세력의 토대가 만만치 않았음에도 말입니다. 다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는 요즈음, '잃어버린 10년', 그 이전의 언어와 모습들이 되살아고 있는 듯 합니다. '문제가 있어도 돈만 벌어주면 안되냐'는 천박한 논리를 우리가 선택하고 부터, 분단 반세기 만에 겨우 숨통이 틔였던 남북의 관계는 얼어붙고, 이른 바 '좌파'에 대한 공격을 '국민윤리'로 착각하는 '매카시'의 후계자들이 활개를 치며, 사법부와 언론은 권력의 눈치를 보는, '7080'으로의 복고풍?이.. 2012. 7. 3.
지난 국토여행기 3 - 선암사에서 굴목이재를 넘다(끝) *위 사진 : 선암사에서 굴목이재로 오르는 길은 온통 선경이었다. 선암사에서 너무 시간을 보낸 탓에 굴목이재를 오르는 고개길은 다소 걸음을 재촉해야 했지만 아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서 산길엔 봄기운이 완연했다. 추위 때문에 입었던 두툼한 파커를 벗어도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휴식을 취하는 바위 옆 언덕엔 보랏빛 얼레지가 쫑긋이 고개를 들어 보이곤 했다. 선암사를 떠난지 20분이 채 안되어 만난 편백나무 숲은 다시 우리의 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인공림인지 자연림인지 모르겠으나 시원스레 쭉쭉 뻗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숲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끌어안고 심호흡을 해보았다. 가슴 가득한 청량감에.. 2012. 7. 2.
지난 국토여행기 1 - 남도의 땅끝으로 봄마중을 가다(끝) 해남을 떠날 시간이다. 바닷가를 따라가다 어느 밭모퉁이에서 걸음을 멈춰본다. 붉은 황토 속에 풀잎같은 초록의 마늘 싹이 줄지어 자라고 있다. 손으로 만져보니 부드럽고 여린 감촉이 느껴진다. 해남군 산이면에는 드넓은 밭에 가득한 배추가 장관을 이룬다.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의 냉기를 먹고 자란 씩씩한 월동배추들이다. 강인한 생명력이 녹아들어서인지 해남의 월동배추는 액즙이 풍부하고 유난히 달고 고소하다고 한다. 마늘과 배추를 보면서 어쩌면 봄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의 온 몸을 드러낸 채 춥고 어두운 숱한 밤을 치열하게 견디어 낸 것들이야 말로 이 봄의 주인 아닌가. 해남의 참다운 아름다움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도처에서 만나는 맑은 햇살과 바람, 그 아래 푸른 숲과 바.. 2012. 6. 27.
지난 국토여행기 1 - 남도의 땅끝으로 봄마중을 가다 4 *위 사진 : 대흥사 천불전의 꽃창살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한 청허당 서산대사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사(袈裟)와 발우(鉢盂)를 해남의 두륜산에 두라고 유언을 했다. 제자들이 왜 그렇게 멀고 외진 곳을 택하는지 궁금해 하자, 서산대사는 그곳이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라고 했다. 이로서 서산대사의 법맥은 대흥사에서 이어지게 되었다. 그 후로 대흥사는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 사진 : 대흥사로 오르는 구곡장춘동의 길 대흥사는 두륜산 계곡의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도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서산대사의 예언처럼 그 어떤 소란도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곳으로 보였다. 명당의 평화로움이 돌본 탓인지 길 양옆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아직 나.. 2012. 6. 26.
지난 국토여행기 1 - 남도의 땅끝으로 봄마중을 가다3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를 배출한 해남 윤씨의 종가이다. 녹우당이란 원래 사랑채의 이름인데, 지금은 종가 전체를 일컫는 이름이 되었다. 푸른 비가 내리는 집이란 뜻의 아름다운 이름은 집 뒤 산자락에 우거진 비자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아하는 비 내리는 소리를 낸다 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이곳의 비자나무 숲은 500년 전 해남 윤씨의 선조가 심은 것으로 천연기념물 24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비자나무가 아니어도 녹우당은 늘 푸르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내가 녹우당을 좋아하는 이유는 녹우당의 내력이나 양반집 살림공간의 크고 화려한 규모 때문이 아니라 대나무 숲과 녹우당의 흙담이 만들어내는 골목 때문이다. 바람에 대숲이 서걱이는 소리를 들으며 햇볕이 가득한 녹우.. 2012. 6. 26.
지난 국토여행기 1 - 남도의 땅끝으로 봄마중을 가다2 땅끝을 나와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 기슭의 미황사로 향했다. 절로 오르는 길 주변은 제법 초록이 가득하다. 서둘러 봄이 온 것이 아니라 한 겨울에도 그 빛이 변치 않았을 난대성 상록수들이기 때문이다. 숲 속엔 차가우면서도 맑은 아침 기운이 서려 있었다. 절 마당에 서서 돌 기간 위에 우뚝한 대웅보전을 올려보았다. 단청이 없어 수수해 보이지만 처마 밑을 받치는 다포의 모양새가 정교하고 화려해 보인다. 지붕 너머로 칼바위 연봉을 세운 달마산의 능선도 장관이다. 아침 햇살이 산 정상의 바위 사이에서 부챗살 모양으로 갈라지며 절 마당에 내려앉았다. 옛날 풍랑으로 표류해온 송나라 사람이 달마산을 보고 “해동 고려국에 달마명산이 있어 그 경치가 금강산보다 더 낫다 하여 구경하기를 원하였더니 이 산이 바로 달마산이구나.. 2012. 6. 26.
지난 국토여행기 1 - 남도의 땅끝으로 봄마중을 가다1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른 곳에 올렸던 지난 국토여행기 몇편을 옮겨보고자 합니다. 멀리 떠나와 살다보니 국토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해 질 때가 있습니다. 지난 여행을 다시 읽어보며 아내와 함께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봅니다. ====================================================== *위 사진 : 땅끝 전망대에서 본 일출 절기상으로는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도 겨울은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개구쟁이처럼 뒤뜰 응달진 곳에 웅크리고 숨어 있다간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듯 달려 나와 풀린 강물과 서둘러 피어난 꽃망울을 놀라게 하곤 한다. 그런 날이면 아직 갈무리해 두지 않은 두터운 외투를 다시 꺼내 입고 어깨를 웅크린 채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상.. 2012. 6. 26.
샌디에고 걷기 23 - CLEVENGER TRAILS SOUTH 부할절 전 금요일. "GOOD FRIDAY"라고 이름도 '굳'하게 휴일이었다. 오후에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섰다. 아내가 동행하지 않는 산행이라 좀 산길이 멀고 험한 곳을 골라보았다. 높고 험할수록 좋은 산행이라는 생각에서는 벗어난지 한참이지만 오래간만에 땀을 흘리며 산길을 걷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CLEVENGER TRAIS SOUTH. 원래는 북쪽 트레일을 염두에 두었는데 오전에 집에서 너무 해찰을 부리다가 출발이 늦어진데다가 초행길이라 산행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안내서에 좀더 짧고 편한 (MODERATELY STRENUOUS) 곳으로 나와 있는 남쪽 코스를 잡았다. 위 사진의 능선 왼쪽 끝이 오늘 산행의 반환점이었다. 트레일 초입에서 한 사내를 만나 동행이 생기는가 했더니 30분 정도만 걷다.. 2012. 6. 15.